-자살 중독자인 해준은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살 시도 후 병원에 실려 오게 된다. 너무도 불행히도 살아남아버린 해준은 병원에서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하비라고 밝힌 여자는 시한부 인생이라고 밝힌 것과 달리 너무 밝고, 쾌활해서 한 순간에 우울한 해준의 인생을 몹시도 귀찮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그런데 이상하다. 자신을 귀찮게만 만드는 그 여자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게 신경 쓰이고,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속이 이상하리만큼 답답하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는 하비가 계속 자신의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바라는 자신을 발견한다.과연 애정이 이들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미리보기>

정말 무료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고 싶지도, 누군가와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도대체 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기분 나쁜 하루였다.
“아저씨!”
어제보다는 익숙해진 목소리에 해준의 인상이 다시금 구겨졌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분명 어제 자신을 귀찮게 해서 쫓아낸 계집애였다. 자신에게 무얼 바라고 저러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너 뭐야?”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자를 쫓아낼 목적으로 해준이 잔뜩 날을 세운 채 물었다. 해준의 저런 목소리를 들으면 몇몇을 제외하고는 목을 움츠리며 무서워했는데, 저 여자는 달랐다. 오히려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무리 중에서도 저 여자는 돌연변이에 속했다.
“아, 아저씨 아직 제 이름 모르는구나, 제 이름은 임하비예요, 이름 완전 예쁘죠?”
얼른 제 이름을 칭찬해 주세요, 하는 눈빛으로 하비가 해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해준은 하비의 이름을 칭찬해 주지 않았다. 하비가 서운하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네 이름 알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
“자기가 너 뭐냐고 물어 놓고……. 아! 아저씨 이름은요?”
하비 본인은 혼잣말이라고 뱉은 말이었겠지만, 해준에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해준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 병실에 와서 뭐하는 짓인가, 정말 꽃만 안 달았지 미친 여자가 틀림없었다. 자신도 우울증과 자살 중독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저 여자와 자신은 비슷한 처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송해……. 뭐인가 봐요?”
해준이 절대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을 것 같자, 하비는 직접 침대에 적혀 있는 이름표를 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침대 이름표에는 ‘송해*’이라고 적혀 있어 백 퍼센트 해준의 이름을 표기해 두지 않은 상태였다. 추리한다고 알 수 있는 일도 아닐 텐데 하비는 해준의 이름을 이리저리 조합해 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하비의 행동에 해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침대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나가라고 소리치는 것도 귀찮으니, 관심을 끊을 생각이었다.
“해진, 해영, 해수, 해지, 해하, 해비? 이 중에 있어요?”
관심 없다는 듯 누워 버린 해준에게 하비가 조르듯 물었다. 하지만 눈을 감은 해준에게선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런 해준이 야속하다는 듯 슬쩍 노려보았다.
“어쩔 수 없네요. 그냥 송해 아저씨라고 불러야겠다.”
이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싶어 해준이 눈을 떴다.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당연히 흥미를 잃고 나가 버릴 줄 알았더니, 하비는 원치 않는 이름까지 붙여 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송해가 뭐야? 국민 MC인 그분께는 죄송했지만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에 해준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이름을 말할 뻔 했지만, 그 위기를 잘 넘겼다. 저 여자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을 도발해서 이름을 말하게 할 속셈이었는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할 듯하다 하지 않자, 굉장히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통성명을 해야 친해지죠. 진짜 이름 안 가르쳐 줄 거예요?”
“친해질 마음 없으니까 가라.”
몇 번을 나가라고 해야 조용히 나갈 건지, 하비는 해준의 말에도 전혀 나갈 마음이 없는 듯했다.
“저는요, 아저씨랑 친해지고 싶어요! 어쩔 수 없다, 진짜 송해 아저씨라고 부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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