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리리안, 악의 세력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요. 다가오는 악의 기운을 무찌를 용사가 필요합니다. 정의롭고, 강한 용사가! 그 용사가 바로 당신이에요, 리리안.”

오, 개소린데.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잘생긴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며, 평범한 백작 영애로서의 삶을 누리고 싶었다. 정의 구현, 세계 평화 따위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나를 신이 선택했다.

강한 힘? 멋진 검? 그걸 나한테 왜 주는 건데? 왜 하필 나야!

“리리, 나와 수도까지 동행하겠는가? 여인 혼자 가는 것보단 ‘졸라 잘생긴 사내’와 함께하는 게 더 즐겁지 않겠나?”

“어…… 아까는 농담이었고요. 신분도 모르는 사람들과 동행하긴 조금…….”

“흠, 일리가 있군. 나는 아헤로스 아르만, 이곳 아르만 왕국의 3왕자라네.”

“와, 왕, 왕자짓!”

2. 작가 소개

안녕하세요, 최아리입니다.

유쾌하고 달달한 스토리로 독자님들의 하루에 짧은 기쁨을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늘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차례

#Prologue

#Chapter 1. 저 용사 안 할래요!

#Chapter 2. 두근거리는

#Chapter 3. 죽음이 나를 부르고

#Chapter 4. 자, 이제 시작이야! (네 꿈을-)

4. 미리 보기

모든 일의 시작은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의 리리안은 아주 평범한 백작 영애였다. 나름 명망 있는 가문인 이실롯 백작가의 막내딸인 그녀는 우유같이 새하얀 피부에 복숭앗빛으로 발그레한 뺨을 가지고 있었으며, 초콜릿을 참으며 관리하는 몸은 바람 불면 날아갈 듯 가느다랬다. 무표정일 땐 단아하고 우아해 보였으나 생긋 웃음 지을 때는 눈매가 예쁘게 휘어 통통 튀는 매력이 있었다.

소소한 취미는 남몰래 19금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이다. 귀찮은 것은 질색이기에 승마를 제외한 운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이렇듯 그녀는 아주 평범한 귀족 영애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왕국의 국교인 루스 교의 신, 루스가 자신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리리안, 지금 세계는 고통과 애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악의 세력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요.”

가끔 억지로 부모님을 따라 신전에 갔을 때 봤던 얼굴이, 정확히는 신전의 조각상이나 그림에서나 봤던 빛의 신 루스의 얼굴이 비통함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도 제 앞에서 말이다. 그리고 리리안은 왜 그가 신관도 신자도 아닌 자신 앞에 현신해,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말로 세상 걱정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어 얼떨떨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다가오는 악의 기운을 무찌를 용사가 필요합니다. 정의롭고, 강한 용사가!”

루스는 연극처럼 과장된 톤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자신을 응시하는 리리안을 향해 햇살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용사가 바로 당신이에요, 리리안.”

오, 개소린데.

◇ ◆ ◇

올해로 스물둘 먹은 리리안은 게으른 편이다. 이실롯 백작부인은 그 게으름을 리리안이 결혼적령기 막바지에 들어섰는데도 아직 결혼을 못 하는 이유라고 종종 투덜대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리리안이 결혼할 마음이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결혼에 있어 그녀의 게으름보다 더 큰 문제는 남자 보는 눈이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까다롭다는 것은 백작부인의 기준으로, 리리안의 입장에선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녀는 지위를 그다지 보지 않았고, 명예나 재산도 크게 끌리는 요소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외모, 외모, 그리고 또 외모였다.

즉, 리리안은 외모가 뛰어난 사람을 매우 밝혔고 언젠간 그런 사람과 결혼하리라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용사가 되어 몬스터를 잡는다는 소문이라도 났다간 여성에게 얌전함과 조신함을 강조하는 이 사회에선 영영 노처녀로 살아야 할 것이었다.

또, 리리안은 그다지 이타심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그녀에겐 자신의 안위와 행복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고, 남을 위해 희생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누군가가 앞에 있고, 그를 도움으로 인해 큰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야 망설임 없이 그를 돕겠지만, 자신을 희생해서만큼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리리안에게 제 한 몸 희생해가며 세계 평화를 위해 힘쓰라는 신의 계시는 그저 헛소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당찬 편인 리리안이라 해도 신을 마주하며 헛소리 집어치우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기도 했고 말이다.

신, 루스는 그런 리리안의 마음과 성격을 알기라도 하는지 얼른 당근을 건넸다.

“그대에게 용사의 힘과 지혜를 주며, 정체를 숨길 수 있게 도와줄 물건도 함께 주겠습니다. 또한 만약 그대가 악의 무리로부터 세상을 지켜낸다면 소원을 하나 들어주지요.”

“소원이요?”

“그래요, 리리안.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 이루어드리겠습니다.”

루스의 말이 너무나 놀라워 리리안은 처음으로 되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답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소원!

뭐든지 이뤄주는 소원!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은 열망들이 재빠르게 리리안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금발의 몸 좋은 미남자가 웃통을 깐 채 에이프런을 입고 자신만을 위해 요리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에 리리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리리안. 그대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루스가 아련하게 말을 마치자 그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자리에는 그의 머리카락 색을 쏙 빼닮은 황금빛 가발이 하나 덜렁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게 뭐지?’

리리안은 가발을 들어올렸으나 별다를 것은 없었다. 그 순간 루스가 했던 말이 빠르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체를 숨길 수 있게 도와줄 물건도 함께 주겠습니다.”

‘에이 설마. 아니지?’

리리안의 입매가 황당함과 옅은 분노로 미세하게 떨렸다.

‘아닐 거야. 분명 쓰면 다른 효과가 있겠지. 얼굴을 못 알아보게 된다든가…….’

리리안은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가발을 착용하려 했다. 어릴 적, 언니의 금발이 부러워 가끔 가발을 사용한 적이 있었던 터라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놀랍게도 머리 위에 얹었을 뿐인데 가발이 저절로 착용되었다. 게다가 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머리칼이 조금 흐트러질 뿐 가발은 벗겨질 기미가 없었다.

마침 리리안의 방문 앞을 지나가던 언니, 마리엔은 그런 리리안의 모습을 보더니 쯧쯧 혀를 찼다.

“야! 너 또 나 따라 하냐? 애가 스물이 넘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마리엔, 나 뭐 이상한 거 없어?”

“설마 몰랐어? 네 존재 자체가 이상해.”

불행하게도 가발의 효과는 고작 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