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가을

돌 벽 뒤에서는 날마다 여명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벽이 만들어낸 검은 공간 안에서 클레이튼에게 찾아드는 것은 별 하나 없는 밤의 암흑이 전부였다. 새벽도 황혼도 없이 단조로운 시간의 흐름만으로 채워진 기다림의 세월. 그의 유일한 벗은 양심이었다.
간이침대 옆에 무릎을 꿇은 채 클레이튼은 깍지 낀 손을 이마에 대고 얇은 매트리스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았다. 먼저 수용되었던 죄수들의 고약한 체취가 주위에 감돌았다.
그는 깔깔한 목소리로 신에게 기도를 했다. 더 이상 떨지 않기 위해서. 용기를 얻기 위해서.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에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켜낼 힘을 얻기 위해서.
기도를 수없이 반복했으니 수월하게 나올 법도 한데 매번 기도의 내용이 달라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음에 남아 있던 의문들이 다양한 형태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의 눈빛에 어려 있던 애정이 분노 섞인 슬픔으로 변하는 것. 자신을 이끌어주던 아버지의 손길이 서서히 사라지고 혼자 자신의 길을 걷는 것.
마지막 기도를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누군가 열쇠를 감방 문의 자물쇠에 밀어넣는다. 문이 끼익 열리자 한 줄기의 빛이 어두운 심연으로 스며들었다.
희미한 빛을 가리려고 손을 들어올리면서 클레이튼은 비틀비틀 일어났다. 문이 닫히고 열쇠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지만 빛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눈이 서서히 적응을 하기 시작하자 그는 손을 내렸다. 단단한 체구의 남자가 등불을 손에 들고 서 있다.
「마틴 선생님?」
클레이튼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헛기침을 한다. 거친 소리가 음울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래. 나다, 클레이.」
「시간이 됐어요?」
「아니, 아직 아니야. 그냥 잠깐 말동무가 돼주고 싶어서.」
클레이는 누더기 같은 모직 바지의 허리띠를 한 손으로 붙들고 반대편 손을 내밀었다. 텍사스, 시더 그로브의 사내아이들은 거의 모두 마틴의 손을 거쳐서 세상에 태어났다. 의사의 손이 따뜻하게 자신의 손을 감싼다. 클레이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마워요, 선생님. 앉으실래요? 별로 좋은 데는 아니지만. 사실 깨끗한지 어쩐지도 잘 모르겠어요.」
클레이는 흐느낌과 흡사한 소리를 입 밖에 냈다. 그 소리가 웃음처럼 들리기를 바라면서.
「괜찮아.」
마틴은 간이침대에 앉아서 손에 들고 있던 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클레이는 천천히 침대에 몸을 싣고 벽에 등을 기댄 뒤 손님을 뜯어보았다. 주위가 어둑어둑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따뜻한 미소가 의사의 얼굴에 새겨놓은 주름들이 보였다.
어려서 몸이 아플 때마다 의사 선생님이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항상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도 위안을 느꼈다. 의사가 자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날씨가 맑을까요?」
「그래 보이는데.」
「동쪽을 향해서 서 있게 될까요? 마지막으로 꼭 태양이 뜨는 걸 보고 싶은데…….」
「모르겠다.」
「그나저나 죄수들을 새벽에 처형하는 이유가 뭐죠?」
「나도 정말 모르겠어.」
클레이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숨죽인 웃음소리가 차가운 감방에 퍼졌다.
「그런 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너무 끔찍해. 저기 선생님, 윌 허키머가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윌은…… 죽었어. 네가 이쪽으로 오고 얼마 안 돼서 폐렴에 걸렸거든. 정말 안 됐지.」
클레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정에 목이 막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기억을 되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윌한테는 부인이 있어요. 아들도 둘이 있고. 난 평소에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딸도 하나.」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클레이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퍼졌다.
「선생님은 어쩌다가 지금까지 독신으로 지내셨어요?」
「날 받아줄 여자를 못 찾았으니까. 한밤중에 환자들을 돌보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생활을 기꺼이 감수할 여자를 못 찾았거든. 여자들한테는 그런 게 힘들지.」
「저기…… 밤새도록…… 여자랑 같이 있어본 적…… 있으세요?」
마틴은 헛기침을 했다. 그는 치료 도중에 뜻하지 않게 접하는 환자들의 사생활을 발설하는 법이 절대 없었다. 자신의 사생활에 관해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런 일이 있지.」
「그 여자한테선 어떤 향기가 났어요?」
젊음의 생기가 넘쳐야 할 클레이의 목소리에 진한 갈망이 배어 있었다.
「라벤더.」
마틴이 대답했다.
「라벤더. 라벤더 향기를 맡아본 기억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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