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용천비여경은 이족이 선조대대로 비밀스럽게 전승해온 무림비기가 실린 것으로 강력한 부계사회인 이족에게 자칫 씨족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위험한 경전이었다.'그 이유는 용의 해, 용의 월, 용의 일에 태어난 사주를 가진 자이어야만 전수가 가능했고 남자가 그 비기를 터득하면 남성을 잃게 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용천비여경의 행방에 대해 무릇 세인들은 알 길이 없었고 그 전수자가 누군지 또한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다. 오직 이족 대대로 명망 높은 귀족세가 몇몇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로 은밀했고 홍진의 먼지에 꼭꼭 감춰진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용천비여경을 전수받는 자는 용이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힘과 검법을 터득하게 되는데 은밀하게 주로 여인이 전수받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오랜 옛날 이족의 시조가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 용으로 승천하려고 오랜 시간 수도를 끝낸 이무기를 죽여 그 피로써 만든 경전이라 원한이 뼈 속 깊이 사무친 자여야 전승이 가능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기에 눌려 식물인간이 되거나 미치광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전수 받으면 완전한 남성을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 역시 잃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었다.'우선은 용천비여경을 통달하는데 십여 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고 수염이 안날뿐 목소리도 사내처럼 굵어져 완전한 남자도 그렇다고 여인도 아닌 중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한 달에 딱 세 번 초, 중 ,하순의 그믐이 되는 날만 온전한 여인이 될 수 있었다.''서천국, 사천성, 량산현. 이족의 태수 이현의 본가.'3월 하순이긴 하지만 저 멀리 다량산 한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 끝은 아직도 알싸했다'꽤 오랫동안 북풍한설을 견뎌오던 매화꽃이 어느덧 하나 둘 꽃잎을 날리기 시작하자 연은 몸이 근질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여자라고 밖에 나가 마음대로 뛰어다니지도 못하고 검술도 배울 수 없다니.'아무래도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깥나들이를 해보겠노라고 결의를 다지며 입술을 앙다물었다.'연이 안채의 동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기웃거리는데 매운 기침소리가 행동을 가로막고 섰다. 연보다 여섯 살 위인 오라버니 원이었다.'“오, 오라버니.”'연은 뭘 훔쳐 먹다 들킨 사람처럼 움찔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연아.”'그렇게 연의 이름을 부르다 말고 원은 마른기침을 연거푸 해댔다. '해사한 그의 얼굴이 기침으로 벌겋게 변해갔다.'연은 놀라 얼른 쪼르르 달려가 주먹으로 원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했다.'“아직 바람이 차가운데 왜 나왔어?”'겨우 기침을 멈춘 원이 숨을 몇 번 들이키며 호흡을 고르다가 희미한 미소를 드리웠다.'“너 또 바깥구경이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게로구나!”'연은 대답대신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말곤 기침으로 눈이 벌겋게 충혈 된 원의 모습에 마음이 아릿해선 그만 훌쩍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