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기이이잉.

묵직한 굉음과 온몸으로 전해 오는 진동에 여은은 눈을 떴다.

“다 왔구나.”

온몸이 축축 늘어졌다. 몇 시간을 푹 잤음에도 여은은 어쩐지 피곤했다.

5년, 그녀가 한국을 떠난 지 꼭 5년이 되었다.

공부한답시고 먼 나라로 날아가 단 한 번도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5년이란 시간은, 그녀를 이방인으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우와, 좋네.”

인천 국제공항의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여은이 딱 한마디 내뱉었다. 말로는 그렇게 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만 많았다.

“누나! 여은이 누나!”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에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여기!”

우글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동생 강은이 손을 번쩍 들고 휘휘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자식, 많이 컸네.”

이메일로 보내오는 사진과 화상 전화 덕분에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동생의 실물을 보지 않았음에도 여은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는 주먹을 쥐고 동생의 등을 팡팡, 쳤다.

“키도 더 컸는데?”

유학을 떠나기 전만 해도 어깨까지 오던 동생의 키가 머리를 지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정도까지 자란 모습에 여은은 대견하다는 듯 감탄사를 토해 냈다.

“이야, 키가 몇 이냐?”

“183센티.”

“오! 아주 바람직한 걸!”

“누나는 힘이 더 세진 것 같아.”

“그러냐?”

열 살 터울의 동생, 강은에게 가방을 턱 넘기며 그녀가 웃었다.

“다들 잘 계시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다 보고하는 엄마를 피한 덕분에 여은은 가족의 안부를 묻는 수고를 해야 했다.

“다들 잘 계셔.”

강은이 두리번거렸다.

“짐이 이게 다야?”

“뭐, 다음 주면 다시 들어갈 거야.”

“뭐어?”

앳된 얼굴이 토해 내는 굵직한 경악.

“짜식, 멀대같이 커 갖고선 이제 변성기냐?”

열여덟의 소년 강은은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아빠는 누나, 아주 온 거라고 했는데?”

“그거야 엄마 아빠 생각이고.”

여은은 아주 상쾌하게 웃었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오래하냐?”

여은의 웃음에도 강은은 심각했다.

“이보게 젊은이, 공부는 죽을 때까지, 평생 하는 거라네.”

내년이면 수험생이 되는 강은에게 큰누나는 아주 좋은 명언을 해주었다.

“치.”

“그리고 이 누님께서 멋진 대작을 하나 맡으셨다.”

“진짜?”

“오랜만에 보는 동생에게 사기 칠 정도로 이 누나, 엉망은 아니다?”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하시던데…….”

“그거야 서프라이즈니까! 최강은! 비밀은 꼭 지키도록! 비밀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 알지?”

“알았어. 그러면 그거 때문에 다음 주에 돌아가는 거야?”

“그렇지! 똑똑하구나! 최강은! 이따 저녁때 가족 앞에서 이 누나가 당당히 선언하마!”

여은은 여전히 쾌활했다. 2주 후면 원하던 영화 일을 하게 되어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몰랐다. 그렇기에 동생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을, 그녀는 깨닫지 못했다.

“밥 먹자, 밥.”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 물론 기내식을 초토화한 여은이었지만 공중에서의 음식보다 지상의 음식이 훨씬 맛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자, 설렁탕집으로!”

공항 내의 식당을 찾은 그녀는 신이 났다.

“하여간, 그 식성은 여전하네, 누나.”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넣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강은이 피식거렸다.

“그럼, 내가 어디 가겠냐.”

아주 오랜만에 보는 설렁탕의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여은은 서둘러 수저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