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켜 준다고 했잖아?”'거친 엄마의 외침 소리가 대문 밖으로 흘러나오자, 단은 대문을 열던 손을 조용히 내렸다.'“지선아!”'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나는 사내의 음성이 단의 굳어진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나 끝까지 책임진다고 약속했잖아?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아이들과 나 지켜 준다고 당신이 약속했잖아? 그런데…….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되잖아. 당신 이러면 안 되잖아. 응? 응?”'처음 거친 음성은 온데간데없이 흐느끼는 엄마의 목소리가 단의 심장을 아프게 옥죄여왔다. 천천히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허름한 마당 한편에서 사내의 옷자락을 붙잡고 울고 있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기 앞에서 울지 않았던 엄마가 낯선 사내 앞에서 펑펑 울고 있는 모습이 생소하기만 한 단은 조용히 두 사람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미안하다, 지선아.”'“태섭 씨!”'“미안해.”'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흐느끼는 그녀를 가슴 시린 눈으로 껴안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이 뻑뻑한 입술을 달싹거렸다.'“엄마!”'작은 단의 부름에 낯선 사내의 고개가 먼저 돌려졌다.'“아!”'놀람과 작은 탄성이 동시에 사내의 입에서 터져 나오자, 그제야 호란도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서둘러 닦으며 그에게서 떨어졌다.'“아, 단아…….”'“왜 울어?”'“아, 아니 울기는 무슨…….”'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자신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는 엄마를 물끄러미 보던 단이 메마른 눈길을 사내 쪽으로 돌렸다.'“누구야?”'“그, 그게…….”'이제 와 아버지라도 차마 말할 수 없어 머뭇거리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제야 이러는 거 면목이 없지만…….”'잠시 말을 멈춘 그가 단에게 다가오자, 그만큼 단도 그에게서 물러섰다.'“다가오지 마세요.”'이제 겨우 열세 살인데도 똑 부러지는 단의 태도와 말에 순간 그의 눈빛이 흐뭇하게 빛났다가 사라졌다.'“예쁘게 컸구나.”'훤칠한 키와 누구라도 한번쯤 돌아볼 정도의 잘생긴 사내였지만, 지금 단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엄마를 울게 만든 낯선 사내일 뿐. '“그, 그만 돌아가요.”'더 이상 딸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지선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그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내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길인데 포기할 수는 없잖아.”'“당신 정말 잔인해.”'“평생 날 욕하고 때려도 좋아. 하지만…….”'미안함이 가득 묻는 눈으로 지선과 단을 번갈아 본 그가 거칠게 속삭였다.'“내 대를 이을 주산을 내줄 수는 없잖아.”'“당신 정말…….”'금방이라도 터질 듯 벌게진 눈으로 소리를 버럭 지른 지선이 휘청거리자, 단보다 그가 더 빨리 움직여 그녀를 가슴에 안았다.'“미안해, 정말.”'“당신 정말 잔인해.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무 잔인해.”'“용서해 달란 말 절대로 하지 않을게. 절대로.”'“안 돼. 태섭 씨 단은 정말 안 돼.”'그의 품 안에서 작은 몸부림을 치며 약하게 거절하는 그녀를 가슴이 터지도록 껴안은 그가 아프게 속삭였다.'“두 번 다시는 당신 아프게 하지 않을게. 그러니 제발 이번 한번만 날 위해 저 아이를 줘. 제발 지선아!”'사랑하기 때문에 지난날을 버텨온 그녀였다. 보잘것없는 고아인 자신을 백옥보다 더 귀하게 사랑해 준 그였다. 그를 위해서라면 불길 속도 뛰어들 수는 있기에 지선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딸아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한 길이니 끝내는 내어줄 것이다. 그런 자신을 잘 알기에 지선의 뺨으로 서러운 눈길이 흘러내렸다.'“엄마…….”'오고가는 말들 속에 자신의 얘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단이 지선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보내자, 엄마가 고개를 푹 숙였다.'“더 이상은 안 돼.”'“나도 알아.”'“어떤 일이 있어도 다치게 하면 안 돼.”'“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그리고…….”'스륵 단을 바라본 지선이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며 씹어뱉듯 속삭였다.'“이 순간부터 날 찾지 마.”'“지선아!”'놀란 그가 몸을 움찔거렸지만, 지선은 더 이상 끌러갈 수 없기에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당신 앞에서 난 약해질 수밖에 없어. 아무리 모질게 마음을 먹어도 그리 되지 않아. 그게 나야. 당신 일이라면 나…….”'떨리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부드러운 뺨을 쓰다듬은 지선이 슬프게 속삭였다.'“내 목숨 쉬이 내줄 수도 있어. 당신이니까. 내 이 심장을 준 당신이니까. 하지만 담비만은 안 돼. 더 이상은 안 돼.”'서러운 그녀의 외침에 그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평생 죽을 놈이라고 욕하면서 살아. 날 만난 걸 후회하고 또 하면 그리 살아. 제발…….”'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의 뺨을 어루만진 지선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리 살고 싶진 않아.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인간답게 살아왔으니까.”'“미안하다.”'“그 마음 단에게 쏟아 줘. 이 못난 어미가 지켜 주지 못했으니까 당신이라도 제발 지켜 줘. 부탁해, 태섭 씨.”'“그래. 그래.”'“엄마 날 보낼 거야?”'이미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기에 사태 파악은 끝난 상태였다. 흔들림 하나 없는 눈길로 묻는 단을 바라본 지선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어뜨리며 오열했다.'“미안해, 단아. 정말 미안해.”'“왜?”'쩍쩍 갈라지는 목젖을 다스리지 못해 절로 쇳소리가 나오고 말았다.'“네 아버지가 널 필요로 하니까.”'“그래서 날 버리는 거야?”'“버리는 게 아니야. 단아, 그런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