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생.''“아니 오시겠지. 못 오시겠지.”'이령이 툭 던진 말에 순간 누군가 방으로 들어서며 답을 했다.'“아니다. 이리 오고 말았지.”'휙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선 이를 확인한 이령은 함박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으로 안겼다. 다름 아닌 가휘 그가 두 팔을 벌리고 이령을 항해 웃고 있었다. '“참으로 전하십니까?”'이령이 가휘 품에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다.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이리 안겨 놓고도 못 믿겠더냐?”'“예. 꿈인가 하여 불안하옵니다.”'“이리 하면 믿을 터이지.”'가휘의 입술이 다가왔다. 그의 입술 감촉에 온몸의 신경이 다시 깨어나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거친 손에 풀어지는 옷고름으로 이령이 걸친 의복들은 금세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침도 채 깔지 못하고 맨 바닥에 누워 버린 그녀의 알몸 위로 가휘가 덮쳐왔다. 마다하지 않은 이령이었고 주저하지 않은 가휘였다. 어느새 서로 바닥을 뒹굴며 서로의 몸을 탐하던 두 사람은 이윽고 마지막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령의 몸이 뜨거워지는 만큼 가휘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창문으로 간혹 불어오는 바람은 두 사람의 몸을 다 식혀줄 수 없었기에 가휘의 땀이 이령의 가슴골로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령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벌어진 다리를 오므려 힘껏 조이자 가휘는 이내 이령의 몸 안에서 부르르 떨더니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령은 조금이라도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 땀으로 흥건한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가휘의 손이 이령을 가득 안았다.'“너는 독이야.”'가휘가 가는 숨을 내쉬며 이령의 귓가에 속삭이는 말이었다. '“독이고 싶사옵니다. 전하께서 저만의 사내일 수 있다면 이 몸 안에 있는 독을 다 뿜어내고 죽는다 하여도 그리 할 것입니다.”''# 현생.''여자는 들어오며 책이 아닌 가휘를 먼저 바라보았다. 카운터 앞에 서서 가휘에게 책 제목을 말하자 그는 서둘러 책을 찾아 여자 앞에 내밀었다. 하지만 여자는 계산할 생각이 없는지 이것저것 물으며 가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이령의 마음이 갑자기 변한다. 화가 난다. 그리고 두 사람을 보기 싫었다. 그들에게서 돌아선 이령은 복잡한 심정으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머릿속에 어떤 단어가 뿌연 안개 속에 가려진 것 같았다. '‘가……뭐지? 그다음은……뭐냐고.’'모르겠다. 앞글자만 떠오를 뿐 기억하려 애쓸수록 단어는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지는 기분이었다. 아프다. 이제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파오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하다. 답답한 가슴으로 인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서 그런지 이령은 조금 휘청했다. 머릿속에 울리는 징소리라도 들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제 핑핑 도는 어지러움까지 동반되었다. 괴롭고 슬프다.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버렸다. '‘왜?’'답을 내리지 못하고 똑 떨어진 눈물을 훔치며 이령은 서점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답답해서, 아파서, 슬퍼서 그렇게 숨이 목까지 차오른 다음에 멈춰버린 곳은 큰 사거리 신호등 앞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이령을 사이에 두고 지나갔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자신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령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이 이령의 머리가 아닌 가슴을 두드렸다.'‘하지만 그는……나만의 것이어야 하는 사람.’'갑자기 이런 생각을 왜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났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여자의 질투를 이령은 처음 느끼게 되었다. '“괜찮아요?”'어느새 이령을 쫓아왔는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돌려 세우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가휘의 표정은 걱정 그 자체였다.'“왜요? 갑자기 왜 그러는데요?”'“아파요. 머리가……너무 아파서.”'“나랑 같이 병원 가요.”'“우리……만났던가요?”'“!”'가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이령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여전히 무수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지나쳐 가고 있다. 또다시 운명은 그들을 떼어놓으려 했고 그들은 그 잔혹한 운명 앞에 맞서 기억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천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환생한 그녀! 이령은 가휘를 알아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