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파출소, 여자 한 명을 둘러싸고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압박을 하자 여자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새결이 선배들을 밀어내고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한쪽 구석의 취조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은 후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 취조실에는 네모반듯한 탁자 하나와 의자 둘밖에 없었다. 새결은 여자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공효선일지도 모르는 여자는 아담한 체격에 수수한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그동안 잘 먹질 못했는지 피부가 노랗게 떠 보였고 피로감 때문에 다크써클도 짙어져 있었다. 많이 마른 체격에 상당히 지쳐 보였다. 일전 야밤 격투 현장에 있었던 여자가 바로 그녀인 듯했다. 어둠 속이라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몸집은 당시와 비슷했지만 몸은 그날보다 깨끗한 편이었다. 그녀는 이치영을 살해한 용의자 공효선이다. 하지만 이런 몸으로 왜?'“이름이 뭔가요?”'여자가 울음을 멈추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제 허벅지 위에 놓여져 있는 손끝만 바라봤다. '“공효선 씨.”'“……난, 정당방위였어요.”'범행을 자백하는 것인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비춰 보이는 거울 쪽을 바라봤다. 밖에서는 지금 이 고백을 녹음하기 위해 분주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죠? 당신은 그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요.”'“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끝이…….”'그녀의 눈가에서 또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어깨가 환히 드러나는 탑 하나에 몸매가 드러나는 꽉 끼는 스키니진을 입고 10센티 굽이 위태로워 보이는 킬힐을 신은 그녀는 요란한 화장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그녀가 잡혀오게 된 상황은 어처구니없게도 우연이었다. 사건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늦은 밤이었다. 나이트에서 싸움이 났고 술에 거하게 취한 그녀가 상대방의 머리를 가방으로 내리치면서 의식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이 출동했고, 그녀는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채로 파출소로 잡혀와 감금되었다. 밤새 그녀는 울며불며 난동을 부렸다고 했다. 그녀의 신분을 알아내기 위해 신분증이나 주민번호를 물었음에도 그녀는 완강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들었고 지문을 채취하겠다는 말에 제 손가락을 물어 피를 보게 했단다. 지금 그녀의 양손의 엄지손가락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그녀가 점점 술이 깨면서 자신이 있는 곳이 경찰서라는 각성과 함께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는지 경찰에게 딱 한 마디를 했다 한다. '‘내가 사람을 죽였나 봐요.’'그 말에 놀란 경찰이 다시 그녀의 이름과 나이 등을 물었지만 그녀는 다시 입을 딱 다물어 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지금 그녀가 그들 눈앞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인지, 조작인지 알 수가 없어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름이 뭔가요?”'확인해야만 했다. 진짜 그녀의 정체. 그리고 그녀의 뒤에 있을 배후를 알아내야만 했다. '“당신들이 찾는 그 사람이, 나일 거예요. 내 이름은…….”'그녀가 다시 입을 꽉 다물었다. 자신의 이름을 말함으로써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누구보다 저 자신이 잘 알 터였다. 그렇게 한참의 적막이 흐르자 여자는 체념하듯 말했다. '“공, 효선…… 내 이름은…… 흑흑…… 흐흑…… 공, 효, 선입니다.”'이름을 말한 그녀가 와아앙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이름도 가짜로 대고 다녔을 테고 쫓기고 있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마음 편히 하지 못했으리라. '“이치영을 압니까?”'끄덕끄덕.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 속에 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대체 왜 그랬습니까?”'“6개월 전에 시작됐어요. 그와의 악연은…….”'“무슨 일이 있었습니까?”'한참 동안 말을 참던 공효선이 탁자 위에 손을 올리더니 주먹을 와락 쥐었다. 파르르, 그녀의 쥔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용서 못해요.”'“그에게 해코지라도 당했습니까?”'“처음엔 그래요. 제가 부른 거나 다름없었어요. 전등에 전구를 갈아 끼우는데 아무리 해도 키가 닿질 않는 거예요. 의자를 놓고 했는데도 제 키론 어림도 없었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까 했지만 할 만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는데 마침 방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놈과 눈이 마주쳤어요. 난 그날을 원망해요. 그를 제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어요.”'“전구를 갈아줬다면 적어도 당신 쪽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그래요. 전구를 갈아주고 핸드폰 번호를 물어봤어요. 그래도 남의 집 전구까지 갈아줬으니 나도 좋게 대하자 마음먹고 스스럼없이 핸드폰 번호를 줬어요.”'“그가 계속 연락을 했던가요?”'“처음엔 문자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주일 뒤쯤 놈이 제가 알바하는 곳까지 찾아왔더라고요.”'“알바하는 곳을 당신이 알려줬나요?”'공효선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따라갔군요?”'“네, 제 뒤를 밟았어요. 미친 거였죠.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어딜 가든 그가 뒤를 밟고 있을까 봐 살 수가 없었어요.”'“그게 다인가요?”'“아뇨. 한 달쯤 뒤부터는 제가 없는 집에 문을 따고 들어와 날 기다리고 있더군요.”'세상에. 그건 좀 심했다. 얼마나 놀랐을까? 공효선의 공포감이 피부로 와 닿았다. '“차라리 이사를 하지 그랬어요?”'“이사를 하려고 해도 이사비용이 필요했고, 그때는 월세 내는 것만으로도 사실 벅차던 마당이었어요. 차라리 고향으로 내려가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스토킹하는 인간이라면 어디든 못 쫓아오겠어요? 어느 날, 그놈이 술에 취해 찾아와 자고 있는 날…….”'“키를 갖고 있었던 건가요? 이치영이?”'“네, 집주인 아들이니까. 아마도 없다면 복사를 해서라도 손에 쥐었을 거예요. 그날 놈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난 뒤부터 거의 매일이었어요. 매일 그놈의 노리개가 되어야만 했죠. 징그럽게 하루도 쉬지 않고 찾아와 날 망가뜨렸어요. 미친놈!”'“잠시만요.”'새결이 그녀를 혼자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취조실 반대편 방에서 모든 얘기를 듣고 있던 양 팀장이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힘들면 내가 할까?”'“아니요. 이런 기분이 되면 안 되는데, 자꾸 용의자의 마음에 휘둘리는 것 같아서 마음을 조절하려고 나왔어요.”'“그래도 다행이군. 순순히 자백을 해줘서.”'“지쳐 보여요. 아마도 이렇게 잡히지 않고 끝까지 내몰렸다면 극단의 결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지금 그녀는 너무도 피폐해져 있어요.”'양 팀장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왜 이렇게 못 견디게 힘이 든 걸까?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분노이리라. 왜 상황이 그 지경이 되도록 어디에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홀로 견뎌냈을까? 차라리 모든 걸 까발리고 구원을 요청했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을 죽였다. 이제 철창 안에서 햇살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 갑갑해졌다.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다시 취조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효선은 계속 울고 있었나 보다. 그녀가 나가기 무섭게 홀로 자괴감과 모멸감에 자신을 질책하고 죽은 이치영을 다시 한 번 더 원망하고 죽이고 있으리라. '끄르르륵. 의자를 잡아 빼 다시 자리에 앉아 결연하고 진중한 눈빛으로 공효선을 응시했다. 지금부터는 객관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무기징역 아니면 사형이겠지만 정상참작이 될 만한 상황인 것 같아요. 정당방위까지는 아니더라도…….”'이치영은 죽이기 위해 공효선을 괴롭힌 것은 아닐 터였지만 그녀는 충분히 그런 공포를 느꼈으리라. '“그날 이야기를 해보세요.”'“똑같았어요. 알바를 하고 돌아오면 보통 11시에서 12시 사이. 와 보면 늘 그놈이 기다리고 있죠. 씻고 나오기만 기다렸다가 먹이를 기다리는 맹수처럼 날 겁탈해요. 나는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매일을 보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점점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나는 감정 없는 인형이 아니잖아요. 나도 감정 있다구요. 그래서 그놈의 목을 졸랐어요. 그냥 죽여 버리자,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