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이라는 말에 지완의 미간은 아까부터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멀찍이 한 여자가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잰 동작으로 다가가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여자를 분석했다. 여자가 등을 보인 채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중학교 교사이고 부모 모두가 같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라 했다. 집안이 학자 집안이라면서 모친은 매우 흡족해했지만 그는 자신과 결혼할 상대가 어쩐지 평범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여자의 곁으로 다가가자 긴장한 탓인지 여자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맞은편에 서서 여자의 얼굴을 살폈다. 하얗기만 한 얼굴에 평범한 이목구비였다. 외모를 딱히 보지는 않지만 첫인상에서 받는 임팩트는 상당히 중요하다 생각하는 그였다. 간결한 동작으로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나지완입니다.”'여자 역시 제 소개를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를 흘끗 쳐다본 여자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갔다. 그를 처음 보는 여자들은 백이면 백 이런 얼굴이었다. 뭔가 경이로운 것을 본 듯한 판타지가 자욱한 얼굴. '“앉으시지요.”'말을 건넨 후 지완이 자리에 앉아 차를 주문했다. 맞선이라는 성향 덕분에 셀프 카페가 아닌 점원이 커피를 날라 주는 곳을 선택했다. 좀 더 편안히 상대방을 관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절대적으로 모친의 배려였지만 말이다. 여자는 말이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제 무릎 위에 포개진 손가락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딱히 그도 할 말이 없다. 묵묵히 시선을 돌렸다. 사선으로 건너편에 남녀 한 쌍이 앉아 있었다. 여자가 등을 보인 채였고 남자의 얼굴은 시무룩하다. 남자 쪽이 건넬 말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저렇게 죄지은 듯한 얼굴이라면 상대방에게 백 퍼센트 상처 줄 말을 건네려 할 것이다. 미간을 더욱 좁힌 채로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의 말소리가 주변의 소음에 묻혀 조그맣게 들려왔다. '“저기…….”'맞선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선 방향에 앉은 남녀에게 시선을 두고 있던 지완의 시선이 다시 여자에게 닿았다. '“상당히 외모가 출중하세요.”'“그렇습니까?”'냉정한 어투, 싸늘한 시선. 지완은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쩐지 여자관계가 복잡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우문(愚問)우답이던가? 보통 맞선 자리에 와서 과거를 들추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는 그였다. 살짝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보셨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아니요. 저는…….”'“겁이 나는 겁니까?”'“네?”'여자가 비로소 눈을 들어 올렸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보일 듯 말 듯한 자신만의 매력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서조차도 일말의 매력을 아주 조금 발견했다. 하지만 정말 손톱만큼의 떨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 여자관계 때문에 그쪽이 낭패 보는 일이 생길까 봐서요?”'당황한 여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대답할 말을 찾았다. '“사실 이 자리에 나오지 않으려 했습니다. 맞선에 대해 긍정적인 편도 아니고……. 제 일 자체가 험악한 자들을 상대하는 일인지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완곡한 거절을 드러냈다. 교사이니 이렇게 몸의 한 자락만 보여줘도 쉽게 파악하고 자리를 떠나리라. 오히려 그의 관심은 사선 옆자리에 앉은 심각한 남녀커플이었다. 그저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에게서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얗게 드러난 우아한 목선과는 어울리지 않는 짧은 쇼트커트. 그리고 발레리나라고 자신을 소개해도 하등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목선과 대비되는 패션 센스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검은 야상점퍼 아래 타이트한 진청색 진이었다.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는 여자의 유독 하얗고 서늘한 손가락에 그의 시선이 닿는다. 느릿하게 움직이며 커피 잔의 몸체를 훑는 손가락 때문인지 자꾸만 갈증이 일었다.'잠시 말이 없다. 적막이 흐른 뒤, 여자가 입을 뗐다. '“지완 씨 일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 생각해요. 지완 씨는 지금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거죠?”'의외로 용감하게 의중을 묻는다. 그의 미간에 잡혀 있던 주름이 좀 더 깊어졌다. '“죄송합니다.”'“알겠습니다.”'여자도 그의 대답을 들은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학생처럼 허리까지 숙이며 꾸벅 인사를 건네고 등을 보인 여자는 그렇게 쓸쓸히 카페를 빠져나갔다. 지완은 아예 팔짱을 끼고 사선 옆자리의 커플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이 초조한 갈등의 정체를 파악하고 싶어서.''“너, 정말 계속 이럴 거야?”'새결은 망연히 앞에 앉은 구열을 바라봤다. 실망감이 가득 밴 눈동자와 아픈 사람처럼 병약해져 버린 얼굴이 평소의 그 같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고저 없이 단조로운 말투로 뱉어냈다. 언제나 그랬다. 감정 따위 없는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 이젠 버릇이 되어 버렸다. '“단도직입? 너랑 나랑 사귄 지 대체 몇 년이야?”'그녀는 더욱 깊어진 시선으로 구열을 바라봤다. 몰라서 확인차 묻는 것은 아닐 터.'“1년 3개월하고도 열흘.”'“하!”'구열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헛웃음을 치며 냉소했다. '“날짜 하나는 기가 막히게 기억하는구나!”'“말투가, 거슬려.”'새결이 싸늘하게 지적했다. 평소의 그는 늘 밝고 유쾌했지만 오늘은 정말이지 그답지 않아 어색했으며 동시에 짜증스러웠다. '“못 하겠다. 너랑은!”'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었다. '“뭘?”'“연애, 그만 하자!”'파르르, 가슴 안 어딘가가 떨렸다. 그런데 정확히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사귀자는 제안을 받았고 남자는 줄기차게 6개월을 미친 듯이 쫓아다니며 죽자 사자 매달렸다. 그래서 그 용기에 감복해 허락했고 남자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환희와 희열에 진저리치던 사내는 없고 날카롭고 예민해져 버린 낯선 남자만이 눈앞에 있었다. '“내가 힘들어서 못 하겠다.”'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먼저 시작을 알리고 기뻐하던 남자가 이젠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다급한 어조로 마지막 통보를 하고 있었다. 사랑했던가? 사실 사귀자 허락해 놓고 그와 만난 것을 횟수로 헤아려 봤지만 그건 고작 한 달에 서너 번이 전부, 다 합치면 채 한 달도 안 되는 것만 같았다. '“너, 나한테 아무런 할 얘기도 없어?”'“이유가 뭐지?”'가장 궁금한 것을 묻자. 첫 번째 연애가 그녀로 인해 깨졌다면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유? 너, 전혀 동요하지 않는구나? 내가 헤어지자고 하는데도!”'구열은 이미 이유 따윈 상관없어 보였다. 헤어지자는 데도 묵묵하게 앉아 있는 그녀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던지 점점 표정이 냉혹해져만 갔다. '“날 사랑, 아니…… 좋아하기는 한 거냐?”'가만히 밑바닥을 들여다봤다. 애초에 뭐가 되었던 좋아한다, 갖고 싶다는 것의 감정을 모르겠다. 그런 건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그에게도 이런 감정은 먼 얘기. 고개를 저었다. '쾅! 구열이 탁자를 부술 듯 내리쳤지만 새결은 몸 한 번 떨지 않았다. '“내가 왜 너 같은걸! 이유? 그래, 알려줄게. 너는 심장이 없는 애 같아! 너한테 매달린 것만 6개월에 너와 사귄 것만 1년이 훌쩍인데 나 혼자만 안달복달하고 있어. 1년 내내 나 혼자만 널 어쩌지 못해 불안해하고 사이코처럼 소리 질러대고 있다고. 너, 내 손 한 번 먼저 잡아 본 적 있어? 나랑 키스한 날짜는 기억해? 너, 나랑 잘 생각은 있냐? 나는 널 안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데 너란 애는 나한테 아예 성적인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아! 아후, 쪽팔려! 이게 다 뭐냐! ……지친다. 1년이나 두드렸는데 마음의 문 한 번 열어주지 않는 너한테 정말이지, 난 지쳤다.”'열어주지 않았던가? 비로소 새결의 눈동자가 살짝 키워졌다. '“사과해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