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 안에서 두 손을 꼭 마주 잡은 수아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 보았지만 머릿속은 자꾸만 준수가 말한 상황을 그려냈다. 그래서 두려웠다. 그래서 무서웠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하게 될까 봐.'드디어 택시가 준혁이 사는 빌라 앞에 도착했다. 수아는 차가 멈춰 서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내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입구에서부터 철통 보안이 된 빌라였지만 하늘의 도움인지 때마침 빌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아는 그 사람들을 밀치고 먼저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갔다.'1701호.'덜덜 떨리는 손으로 준수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겨우 누르고 안으로 들어간 수아를 제일 먼저 반겨 준 것은 코를 찌르는 지독한 술 냄새와 담배 냄새였다. 순간 수아의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더듬더듬 불을 켤 수 있는 스위치라고 생각되는 것을 눌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환하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조명 하나가 켜졌다. 수아는 그 등에 의지해 준혁을 찾기 시작했다.'“아저씨! 아저씨!”'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전무님이란 호칭으로 불렀던 직장 상사 서준혁은 지금 수아의 머릿속에 없었다. 오직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 열일곱 살에 처음 만나 사랑하기 시작해 스물네 살이 된 지금도 사랑하는 남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 서준혁만이 있을 뿐이었다.'“아저씨!”'길을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수아는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넓은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준혁을 부르고 또 불렀다. 제발 그가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빌고 또 빌면서.'서재를 찾아보고 침실을 찾아보고 주방까지 준혁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수아가 반대편 다른 방을 찾아보기 위해 거실을 가로지르는 그때 소파 너머 창가에 있는 뭔가가 수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아저씨?”'흐느적거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해 한 걸음 한 걸음 창가로 다가가던 수아는 침대도 소파도 아닌 창가 바로 앞 카펫 위에 널브러져 있는 준혁을 발견하고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대자로 누워 있는 준혁에게서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미친 듯이 질주하는 제 심장 위에 덜덜 떨리는 손을 올려놓은 수아는 천천히 무릎걸음으로 준혁에게 다가갔다. 단 한 순간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하아!”'준혁에게 다다른 수아의 입에서 길고 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준혁의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절로 안도의 눈물이 고였다.'“아저씨!”'수아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부르며 떨리는 손을 그에게 가져갔다. 손끝에 닿는 그의 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아주 따뜻한 온기가. 그것만으로 감사했다. 그가 살아있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수아는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수아는 조금 더 움직여 그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았다. 와이셔츠 단추가 다 풀어헤쳐져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그의 맨가슴을.'쿵. 쿵. 쿵. 쿵. 쿵.'활기찬 심장 소리가 들렸다. 안도의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엊그제 보았을 때보다 더 상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에 온 신경을 빼앗긴 수아였다.'“고마워요. 고마워요.”'우는지 웃는지 모를 수아의 얼굴이 금세 눈물범벅이 되었다.'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손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겨우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나서야 수아는 준혁의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환한 불빛 아래가 아니라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환기나 청소를 한 지 한참은 지난 것 같았다. 거기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빈 술병이 아주 즐비했다. 그것들을 차례로 훑어본 수아의 시선은 다시 준혁에게로 향했다.'이 남자를, 이 가엾은 남자를 어찌해야 할지.'기쁨의 눈물은 그새 멈추고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묻어난 눈물이 다시 강을 이루고 있었다.'이 남자의 아픔이, 고통이, 외로움이, 상처가 수아의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어루만져 주고 달래 주고 감싸 주고만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으로 그를 감싸 주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나눌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나눠 가질 수도 있었다. 아니, 그녀가 대신 짊어지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남자가 다시 웃을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