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엄마는 끔찍하지 않아요?]

고사리 같은 양손으로 침대 가장자리를 꼭 잡은 레드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추방지에 갇혀서 사는 거요.]

어린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눈매가 안타까움으로 젖어들었으나, 대답은 평소처럼 다정했다.

[그럭저럭 괜찮단다.]

병색이 심하게 짙어져서 이젠 무얼 삼키지도, 혼자서는 앉지도 못할 때였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소녀처럼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거야……. 네 아빠를 사랑하니까.]

먹을 것도 없이 괴수들만 득시글거리는 추방지.

이 황량한 추방지로 일가족이 쫓겨 온 것도 다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서. 그런데도 사랑한다고? 사랑하니까 굶주림도, 아픔도, 비참함도 다 참아낼 수 있다는 건가?

여덟 살 난 아이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그건……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였지만.

레드는 느리게 눈을 떴다.

컴컴한 천장이 보이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잠에서 깨자마자 까칠한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화려한 금발이 그의 얼굴 주변에서 출렁거렸다.

레드는 가림막을 밀치며 낡은 침대에서 내려섰다.

유달리 떡 벌어진 어깨에, 꽉 잡힌 탄탄한 복부. 길쭉길쭉한 팔다리에 젊은 남자 특유의 탄력이 있었고, 야성적이면서도 섹시한 활기가 넘쳐흘렀다.

촤악.

긴 가림막을 침대 끝까지 단번에 걷었다가, 아버지의 물건이 손끝에 닿자 반사적으로 거칠게 밀쳐버렸다.

“질색하기는. 대체 왜 그렇게까지 아버지를 싫어하는 거냐?”

쭈그리고 앉아서 식사 중이던 삼촌이 툴툴거리며 물어왔다. 레드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굵은 팔뚝에 가느다란 끈을 하나 감고, 단검을 챙겨 들었다.

단검은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아버지의 물건 중에서 그가 ‘쓸모가 있기 때문에’ 건드리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다.

짧게 한숨을 내쉰 삼촌이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니는…… 추방지에서 살게 된 걸 슬퍼했지만, 그래도 불행해 하지는 않았어.”

대신, 행복해하지도 않았지.

레드는 입매를 비틀며 비웃어 버렸다. 그의 새파란 눈동자는 칼날처럼 냉랭하고 어두웠다.

삼촌이 됐다는 투로 포동포동한 손을 휘저었다.

“이건 아마 네놈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좀 더, 흐음……. 더 넓은 세계를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넓은 세계?”

문가까지 걸어갔던 레드가 대놓고 실소하며 빈정거렸다.

“아버지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나 이 답답한 추방지에서 평생을 갇혀 살게 됐는데, 그 넓다는 세계를 볼 수나 있다면.”

“삐딱하기는…….”

빈 접시를 무릎에 내려놓은 삼촌이 불현듯 새삼스러운 눈길로 레드를 건너보았다.

190cm를 넘는 건장한 키에 아름다운 얼굴. 눈에 확 띄는 화려한 금발. 탄탄한 근육질의 강골에, 날렵하게 쭉 빠진 조각 같은 몸까지.

삼촌이 그리운 듯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레드. 네놈은 아버지의 외모를 정말 쏙 빼닮았는데, 어째 성격이나 행동거지는 전혀 네 아버지 같질 않아.”

펄럭.

레드는 등 뒤로 천 자락 문을 닫으며 대꾸했다.

“그나마 다행인 거지.”

***

아버지는 외팔이였는데, 대단한 전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레드에게 아버지는 그저 책임감 없는 가장이었을 뿐.

어머니가 추방지에서 중병이 들자, 아버지는 약초를 구하려고 괴수들이 많은 지역으로 찾아갔단다. 결국 너무 많은 괴수들에게 공격당해서 사망. 시신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뼈조차 수습할 수가 없었다나?

아버지가 그렇게 죽어버린 뒤, 어머니는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를 느릿느릿 꺼내 입었다.

삼촌이 극구 말렸으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은 곳에 가봐야만 한다고 했다. 중병에 걸려서 앉지도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대체 무슨 의지였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아주 평온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삼촌에게 한 번, 어린 레드에게 한 번 사과했다.

드레스 자락을 부드럽게 날리면서 비틀비틀, 홀로 집을 나선 어머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레드가 여덟 살 때 일. 어린 나이에 고아가 돼버린 그는 지금껏 그 어떤 여자에게도 사랑 따위를 느껴본 일이 없었다.

레드는 발꿈치를 들고 우아하게 자세를 낮췄다가, 단번에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화라라락.

옷자락이 바람을 타고 나부꼈다.

50m. 100m. 20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