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밤새 뒤척이느라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퀭해진 얼굴로 문을 잠그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히 주무셨어요?”'“으악!”'녀석은 나보다 더 놀란 눈을 하고는 재빨리 커다란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뭐하는 짓이냐고, 왜 여기 있냐고 묻는 눈빛을 유선오는 알아차린 듯했다. 그러나 녀석은 대답 없이 씨익 웃을 뿐이었다. 한심하단 눈빛을 보내면서 내 입을 막은 녀석의 손을 대충 쳐냈다. '“커피숍도 운영하고 있다며? 글도 쓰고 커피숍도 관리하고. 안 바쁘니?”'“바쁘지. 근데 시간을 쪼개 쓰는 거지.”'“대체 왜?”'“와. 그걸 아직도 몰라?”'당해낼 수가 없다. 능글맞게 맞받아치는 녀석을 보며 일부러 한숨을 흘리고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얌전히 따라오는 녀석의 걸음소리가 이어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내내 녀석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지 않는다고 해서 가슴이 반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진정하자. 제발 좀.’'“점심 뭐 먹을래?”'“뭐?”'“점심.”'“난 회사 사람들하고 먹을 거니까 넌 너희 커피숍 직원들이랑 먹던지 네가 좋아하는 신지훈이랑 먹어.”'“얘기가 다르잖아.”'“무슨 얘기?”'“앞으로 나랑 밥 많이 먹어주겠다고 했었잖아.”'“난 그렇게 얘기한 적 없거든.”'“그래?”'“그래.”'냉정하게 딱 잘라 말했지만 유선오는 끈질겼다. 회사를 가는 내내 옆에 붙어서는 점심을 같이 먹어야 되네, 약속은 약속이네, 주구장창 얘기를 해대며 나를 괴롭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 멈춰 서 녀석을 최대한 무섭게 노려보았다.'“가서 일 좀 하지.”'“밥 같이 먹어주면.”'투정부리는 말투와 달리 나를 바라보는 새까만 눈동자는 진지했다. 사실, 이렇게 떼를 쓰는 녀석이 이해가 안 되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하는 내가 이해 안 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녀석에게 툴툴대는 거지? 그냥 밥 한번 같이 먹으면 되는 것을. '생각을 하느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동자가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 하는 유선오의 손길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제 상처를 보기 위해 신지훈의 손이 닿았을 때하고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바로 와 닿는 새까만 눈동자가 보기 버거워 슬쩍 시선을 피하려는데 녀석은 다시 내 얼굴을 돌림으로서 주의를 요했다. 다시 진지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소, 손 안 치워?”'“너 왜 날 똑바로 못 봐?”'“무, 무슨. 내가 언제?”'“저번부터. 그래, 저번부터 그랬어. 왜 날 똑바로 못 보지?”'녀석은 내게 묻고 있다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긴장이 되어 시선을 잠시 내려두었다가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녀석이 눈치를 채기 전에 수습하려는 의도였지만 노력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한층 더 깊어진 새까만 눈동자가 호흡을 제대로 유지시키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한 번 더 시선을 피하자, 녀석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너 설마…….”'“…….”'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슬금슬금 도망가려 했지만 아직 내 턱을 잡고 있는 녀석의 손길 때문에 더 이상 뒤로 물러나지 못했다. 유선오는 내가 물러난 만큼 다가와 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나 보면 떨려?”'나는 어린 시절부터 연기에 재능이 없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완벽한 연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리자, 살짝 흔들리던 녀석의 눈동자엔 살며시 미소가 고였다. '“내가 좋아?”'“……놔.”'경고가 담긴 목소리에 녀석은 잡고 있던 내 얼굴을 순순히 놔줬다. 하지만 아직도 눈동자엔 웃음기가 고여 있었다. 녀석을 똑바로 노려보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시선을 피하고는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는 녀석의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좋아졌단 말이지. 그럼 그렇지. 유선오의 매력을 피해갈 수가 없지. 더 두고 보면 내 매력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걸. 내가 신지훈보다…….”'홱 돌아보자, 뒤따라오며 중얼대던 녀석은 주춤하며 입을 다물었다.'“그만 좀 하지.”'퉁명스런 말투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입꼬리는 더 활짝 올라가고 있었다. 이젠 들켜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녀석을 좀 더 괴롭혀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남자 아이가 좋아하는 여학생을 괴롭혔던 것과 같은 마음이었을지도.'‘그래, 내가 너 좋아한다, 이 자식아!’'속으로 한껏 외쳐대며 다시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