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매를 부리는 여인

하늘을 올려다보면 제법 빠른 속도로 흐르는 구름이 불안감도 함께 흩뿌렸다.

“아무래도 곧 비가 오겠네.”

목소리의 주인은 꽤나 하얗고 작은 손을 지녔다. 다각다각! 바쁠 것 없이 걸음을 옮기는 말 등에 앉아 삽시간에 흐려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턱선 또한 갸름하고 날렵한 것이 그만하면 꽤난 수려한 외양이었다.

여인인가? 혹은 사내? 성별은 쉽게 짐작이 되지 않았다. 가는 체구며 흰 분이 묻어날 것 같은 살랑살랑한 피부를 보면 여인네인 듯싶었다. 그런데 또, 고삐를 잡은 왼손, 정확히는 팔뚝까지 감싸고 있는 두꺼운 가죽 장갑은 버렁이다.

꽤나 낡아 여기저기를 새 가죽으로 기워 놓은 버렁의 생김새는 분명 능숙한 매잡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수인(狩人: 사냥꾼)인가?

삐익!

붉은 아랫입술을 손가락 두 개로 슬쩍 잡아 불어낸 휘파람 소리가 사방을 막은 절벽 사이를 타고 흘렀다. 그때였다. 절벽 근처의 하늘을 아슬아슬 하게 선회하고 있는 작고 까만 점 하나가 홀연히 시야로 들어왔다.

싱긋! 수려한 입매에 미소가 그려지고! 삐이익!

다시 한 번 휘파람 소리가 절벽을 통과했다. 이번엔 조금 더 길게, 가늘게! 그러자 놀랍게도 하늘에 뜬 점이 눈에 띄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크게 원을 그린 그 점은 곧장 산 아래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하늘에 띄웠으니 연? 그러나 연이라 하기엔 그 속도가 너무 빠를 뿐더러 자유로운 방향 전환엔 어떤 속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휘익! 파드득!

생생한 날짐승의 날갯짓 소리! 마치 바람의 흐름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날아온 것은 놀랍게도 커다란 매였다.

사냥꾼이 내밀어준 팔뚝 위에서 매는 무게감 있게 퍼덕이던 날개를 오만하게 접고, 위험 있게 구부러진 날카로운 부리를 쳐들었다. 노랗고 까맣게 사방을 노려보는 번뜩이는 눈, 꼿꼿한 깃털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마저 가득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려앉은 매는 이제는 조선 땅에서 쉽게 찾을 수 없다는 큼직하고 건강한 해청(海靑), 그것도 해청 중 가장 최고라 일컬어지는 백송골(白松鶻)이었다.

“수고했다, 여리야.”

힛! 킥! 케케!

주인의 칭찬에 매는 부리를 들어 시파치의 가는 턱에 비비며 어리광을 부렸다. 커다란 덩치가 무색하게 아양을 부리듯 히익거릴 때마다 빳빳하게 긴장하던 부리 아래 깃이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아하하 이 녀석아!”

그제야 확실해졌다. 매의 어리광에 따라오는 맑은 웃음! 그것은 아무리 고쳐 생각하려 해도 사내의 것이라 할 수는 없었다. 분명히 여인의 것이다.

여인의 몸으로 이토록 커다란 매를 다루는 그녀의 이름은 강씨 성의 담하! 여주 사는 강 진사의 하나뿐인 조카딸이었다.

“그만 가자. 곧 비가 오겠어.”

속삭이듯 중얼거리고 매를 공중으로 날리자 여리는 곧 다시 날개를 펴고 바람을 갈랐다. 유연하게 방향을 잡고 앞서 나는 매를 따라 담하도 말을 재촉했다.

“이랴!”

길은 좁았다. 기암절벽이라는 뜻이 우스울 정도로 커다란 바위가 사방에 널려 있는 좁은 산세! 좁은 길! 하지만 여인의 몸으로 말을 모는 자세마저 군더더기라고는 없이 일품인 그녀는 누가 뭐래도 완벽한 매사냥꾼! 시파치처럼 보였다.

* * *

“하아암!”

소명은 길게 하품을 하고 눈꼬리에 묻어나는 눈물을 손가락 끝으로 찍어 냈다. 벌써 몇 번째 한숨인지, 한양을 떠나온 지 벌써 나흘! 단서도 없고 더 이상 기다려 볼 인내심마저 서서히 바닥나고 있었다.

개다리소반에 얹어진 국밥에서 먹음직스러운 훈김이 모락모락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소명은 그 밥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누구라도 같은 밥을 나흘씩이나 먹어 보라! 제 아무리 훌륭했던 맛이라도 이제 너무 지겨워, 혀에서 먼저 비린내가 날 지경이었다.

그는 지금 여주 근방의 한 주막에서 방을 빌려 머무는 중이었다. 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 또 한양에서 지방으로 가는 길! 딱 그 중간에 있는 이 주막은, 상인이며, 노자가 궁한 양반들까지 꽤 다양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리고 하필 그런 주막에 머무르는 그에게도 지금은 목적이 있었다.

“정말 여기 그자가 있긴 한 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겨우겨우 한 숟가락을 떠내는데 익숙한 냄새가 훅 물린다. 소명은 팽개치듯 수저를 국밥에 박아 놓고 뒤로 벌렁 고개를 젖혔다. 비가 오려는지 꽤나 수상해진 하늘에 구름이 빠르게 흘렀다.

“사람 속도 모르고!”

공연히 구름마저 야속했다.

‘하아! 지금이 어떤 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