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은 도마뱀부터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한 마리 남았던 금붕어가 죽어 있었다.

홍람은 한동안 잠이 덜 깬 멍한 눈으로 어항 속의 금붕어가 죽은 체하는 걸 관두고 다시 움직이진 않을까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이변은 일어나지 않는다.

“죽어 버렸구나.”

덤덤히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남았다.

“너마저.”

그렇게 덧붙이니 죽은 금붕어를 탓하는 것처럼 들린다. 홍람은 맨손으로 어항에서 건져 올린 금붕어를 들여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새 주인 찾느라고 내가 푸념하는 소릴 들은 거니. 그래도 그렇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아직 몇 달은 남았는데.”

이 또한 금붕어를 탓하는 느낌이 들어 홍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말은 새 주인을 찾느라 푸념했다고 했지만 결국 이렇다 하게 행동에 옮긴 건 없었다. 덧붙인 말처럼, 아직은 그렇게 급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한 쌍으로 사왔던 금붕어가 한 마리만 남아서 어항을 쓸쓸히 배회한 것도 거의 열흘 가까이 됐을 것이다. 확인 겸 달력 앞으로 걸어가 보니 딱 지난주 월요일 저녁에 짝꿍이 죽었다. 이제 그다음 주 토요일이 되었으니 손 안의 금붕어는 거의 2주 동안 혼자였던 셈이다.

그렇다 해도 잘만 키우면 10년도 산다던 애들이 1년도 못 되어 다 죽다니. 관리 소홀 탓인가 하고 지난 열흘간 수온까지 체크해 가며 청소도 두 번이나 해준 어항을 바라보며 홍람은 탄식했다.

“내 손에선 뭐가 남아나질 않네. 앞으론 살아 있는 건 절대 안 키워야겠어.”

빈손으로 독립해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뒤로 홍람은 어릴 때 못 해본 일의 포한을 풀듯이 별의별 것을 다 키워 보았다.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개를 제외한 고양이, 고슴도치, 햄스터, 다람쥐를 비롯해 이구아나, 금붕어에 이르기까지. 이제 금붕어가 죽으면서 10년에 걸친 애완동물 잔혹사도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된 듯하다.

“여기서 더 욕심내면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거겠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답 없는 금붕어를 고이 받쳐 들고 비닐 팩에 싸서 냉동실에 넣었다. 우느라 눈이 퉁퉁 부어서 출근이 곤란할 정도였던 건 고슴도치 적에 졸업했다. 그 뒤로 찔끔찔끔 눈물도 줄어들다가 이제는 눈물조차 안 나오는 경지.

눈물 대신인지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마른기침을 달고 다니며 홍람은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2시 반 즈음에 다시 현관에 들어선 홍람은 소나기를 그냥 맞고 오느라 몸이 좀 젖어 있었다. 잠깐 수건으로 얼굴의 물기만 훔친 뒤 약을 챙겨 먹고 냉동실에 있는 비닐봉지를 꺼내 도로 현관으로 향했다.

비록 새 주인을 찾아주는 일은 게으름을 피웠다지만 금붕어의 장례만큼은 오늘을 넘기지 않을 생각이다. 전에 녀석의 짝을 묻어 준 백일홍 나무 아래에 함께 묻어 줄 터였다.

“비도 오고 하니 한적하겠다.”

홍람이 지내는 낡은 맨션에서 바라보이는 해발 210미터 남짓의 야트막한 뒷산.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로 인기가 높지만 마침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참이라 짐작대로 인적이 뜸했다. 다만 그녀가 전에 죽은 금붕어를 묻어 준 백일홍 나무는 부러 꽤 올라가서 숲을 돌아다닌 끝에 찾아낸 것이라 오늘 같은 날의 이점이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다.

가을이면 꼭 제 색과 비슷한 붉은 꽃을 피우는 나무 아래에 묻어 주는 것. 취지는 좋았는데 출근길에 딸기 우유 하나 마신 것 밖에 없는 처지엔 어째서 그렇게까지 수고를 들였던가 하는 후회가 치밀어 올랐다.

“어차피 죽어 버리면 아무것도 모를 텐데. 아, 배고파, 당이 훅훅 떨어지네! 사탕이라도 챙겨 올걸.”

투덜거리면서도 기어코 목표했던 백일홍나무를 찾아내 전에 만든 무덤 옆이라 짐작되는 곳을 삽으로 팠다. 아직 한참 남았던 먹이를 위아래에 이불처럼 두툼히 덮고서 빨간 금붕어는 흙으로 돌아갔다.

홍람은 잠시 묵념을 겸해서 나무 옆에 앉아 한숨 돌렸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조금씩 들치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그녀는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이젠 진짜 아무것도 안 키울 거야. 살아 있는 것은, 설사 풀 한 포기라고 해도 말이야. 내 딴엔 노력이라고 했는데 너희들이 다 그렇게 빨리 죽어 버리는 걸 보면 내가 정말 재수가 없는 걸 테니까. 응, 확실히.”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38년을 산 끝에야 그걸 인정하게 됐네. 나도 참 무던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