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툼­의견이나 이해의 대립으로 서로 따지며 싸우는 일''''''토요일 오후다운 부산함이 카페 안에 가득했다. 시끌벅적 자신들만의 이야기에 열중해 있는 사람들 틈을 뚫고, 쟁반을 어깨 높이로 치켜든 종업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경은 바로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종업원을 좇아 무심히 눈길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몸도 함께 따라가고 싶었다. 힐끔 앞자리에 앉아 있는 종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새하얀 해군법무관 정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는 여전히 탁자 위에 놓인 찻잔만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되고 있는 그의 침묵이 그녀의 가슴 언저리를 무겁게 짓눌러왔다. 절로 한숨이 터졌다. ''“그래서?”''마침내 종빈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낮은 목소리로 다그쳐 묻는 그의 말에, 연경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솔직히 그가 화를 낼 거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싸늘한 분노를 드러낼 줄은 차마 몰랐었다. ''잠시 주춤하던 그녀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여기서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대답을 했다.''“어쨌든 내년 봄에 결혼하기로 했던 일이야. 이깟 몇 달 앞당기자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리 심하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잖아.”''“넌, 내가 지금 결혼 문제로 화가 났다고 생각하냐?”''무표정한 종빈의 눈동자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연경의 얼굴에 잠시잠깐 머물다가 이내 멀어져갔다. 그녀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양손을 힘껏 마주잡았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차라리 그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질러주었으면 싶었다. 그럼 그가 뱉어내는 불평불만들 속에서,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그 이유라도 꼬집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체 왜 기분이 나쁜지는 말도 안 해주면서, 그녀더러 속내를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다며 화를 내는 것은 순전히 억지였다. ''이런 경우가 제일 곤란했다. 그녀가 무슨 독심술의 대가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생판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알아. 단순히 결혼 시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게 아니란 걸 내가 왜 모르겠어?”''연경은 일부러 꾸민 부드러운 말투로 자분자분 이야기했다. 그러자 종빈이 어이없다는 듯 소리도 없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알긴 뭘 알아?”''차가운 빈정거림이 그녀를 향해 던져졌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욕지거리가 치받쳐 올랐다. 제대로 마음을 몰라준다면서 화를 낼 때는 언제고, 그 속내를 다 헤아린다고 하니까 이제 와서 알긴 뭘 아냐면서 따져 묻다니……. ''도대체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소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못된 심사가 정말이지 너무나 괘씸했다. 자연 되받아치는 그녀의 목소리에도 냉기가 서렸다.''“그럼, 내가 똑똑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정확히 하란 말이야. 퍼즐놀이라도 하는 것마냥 띄엄띄엄 한마디씩 툭툭 내던지지 말고…….”''“난 돈 많은 인간들 구린 뒷구멍이나 닦아주고 다닐 생각은 절대로 없다.”''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은 종빈은 연경을 향해 눈길조차 두지 않은 채, 잇새로 단어들을 씹어서 뱉어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그녀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 그 자체부터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제대하면 검사 임용 포기하고, 우리 아빠 회사에 들어오란 말이 그렇게 싫었니?”''눈을 똑바로 치뜬 연경이 거세게 따져 물었다. ''종빈은 여전히 시선을 비끼고 앉아 그대로 침묵을 지켰다. 그런 하찮은 질문에까지 일일이 답을 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가, 표정 없는 얼굴로 조용히 창밖만 응시하고 있는 그를 더욱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엷은 한숨을 짓고는 마침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네 눈에는 우리 아빠 회사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니? 이래봬도 법무법인 지평이라고 하면 이 바닥에서는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내로라하는 굴지의 재벌들만 상대하는 회사란 말이야. 얼마 전 너한테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는 그 한강인가 뭔가 하는 회사야말로 우리 아빠 회사의 반에 반도 안 되는 규모라고…….”''이야기를 마친 연경이 두 눈을 더욱 크게 부릅떴다. 흡사 ‘이거 왜 이러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종빈의 입가로 서늘한 비웃음이 한 자락 빠르게 지났다.''“지평이고 한강이고 간에 난 변호사가 되는 일엔 관심 없다고 했지?”''“변호사가 뭐가 어때서? 변호사 수임료가 그 쥐꼬리만 한 검사 월급에 비할 것 같아?”''잔뜩 흥분한 그녀가 언성을 높였다. 반면 그는 한껏 목소리를 낮춰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 몇 푼 되지도 않는 수임료에 내 꿈도 자존심도 팔아라, 그 말이냐?”''종빈의 음성은 표정도 없고, 감정도 없고, 높낮이는 물론 강약조차 없는 기계음과도 같았다. 이내 연경의 등줄기를 따라 오종종한 소름들이 번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핸드백을 열었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다음 순간 담뱃갑을 찾아 정신없이 물건들을 헤집던 그녀의 손길이 멈추었다. 그를 만나러 나오면서 일부러 집에 두고 왔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그다지 담배를 즐기지 않는 그는 여자의 흡연에 대해서 극단적이다 싶을 만큼 반대를 했다. ''그녀는 담뱃갑 대신 붉은 장미 문양이 선명하게 수놓인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재빨리 네모반듯하게 접힌 그것을 펼쳐, 양쪽 손바닥에 맺힌 식은땀을 번갈아 닦아냈다. 그리고 동시에 조심스레 호흡을 골랐다. ''종빈과의 관계를 완전히 끝낼 각오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여기서 그만 후퇴해야 할 듯싶었다. 저 낮게 깔리는 그의 목소리가 그 사실을 여실히 방증하고 있었다. ''그는 분노가 극에 달할수록 말수가 적어지고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점에 이르러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보아하니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음이 틀림없었다.''연경은 다시금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리고 조곤조곤한 어조로 달래듯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나랑 결혼하면 우리 아빠 회사가 네 거가 되는 거잖아. 앞으로 우리 오빠랑 둘이서 회사를 잘 이끌어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걸로 봐선, 아빠도 이미 그렇게 마음먹고 계신 듯했어. 편한 길, 좋은 길 놔두고 굳이 힘들고 어려운 길로 갈 것까지는 없잖아. 변호사도, 검사도 다들 힘들게 일하는 것은 마찬가진데, 특히 검사 월급은 턱도 없이 적어. 그렇다고 당장 나라에서 검사들 월급을 획기적으로 올려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변호사 수임료에 문제가 있다고들 하지. 그렇지만 힘들게 일한 대가로 그만큼도 못 받는다면 진짜 바보잖아. 안 그래? 변호사나 검사나 어차피 법을 다루는 일인데, 하는 일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우리 그냥 검사 임용 포기하고, 아빠 회사에 들어가자, 응?”''“너 솔직히 말해봐라. 갑자기 결혼식을 앞당기자고 하는 저의가 뭐냐?”'한동안 묵묵히 앉아 연경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종빈이 생뚱맞은 질문 하나를 던졌다. 겉보기에는 아무 생각 없이 날린 듯하지만, 결코 괜히 던진 물음은 아닐 터였다. 저 비상한 머리로 벌써 그 해답까지 추정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때일수록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무겁게 입술을 떼면서, 연경은 지난 6년의 세월이 단순히 시간만 빼곡히 쌓아놓은 헛된 탑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기야 그 오랜 세월 공들인 수고가 아까워서라도 그를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오빠가 수상해서 그래.”''“네 오빠가 나랑은 회사를 나눠먹기 싫다고 그러디?”''종빈이 심드렁하니 물었다.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역시나 그는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연경은 공연한 거짓말로 둘러대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새삼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그리고 엊그제 우연히 엿들었던 아버지와 오빠 사이에 오간 대화를 그대로 전했다.''“세상에! 우리 오빠가 글쎄…… 넌 검찰청에 뼈를 묻을 사람이니까, 굳이 아빠 회사를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잖아. 그야말로 아예 혼자서 통째로 다 먹겠다는 심보가 아니고 뭐냔 말이야.”''“이대로 두고 보다가는 네 코앞에서 오빠가 몽땅 채갈 것 같다?”''종빈이 냉소를 보였다. 입아귀 끝자락이 심하게 뒤틀리는 것이, 그의 기분도 그다지 편치만은 않은 듯했다. 이제야 겨우 이야기가 제대로 통하는 모양이었다. ''신이 난 연경은 지난 며칠 동안의 가슴앓이를 조잘조잘 그에게 읊조려댔다.''“그래. 너도 기분 나쁘지? 최소한 회사의 절반은 내 건데, 이대로 앉아서 다 빼앗길 수는 없잖아. 우리도 서둘러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니까 그러네.”''“나는 네 아버지 회사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으니까, 네 그 잘난 오라버니한테 몽땅 다 가지라고 해라.”''그가 문자 그대로 단어들을 툭툭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아주 천하태평인 얼굴로 홍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진짜로 회사가 어떻게 되든 간에 조금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어이가 막혔다. 대충 주식만 계산해도 수백억을 웃도는 거액이었다. 더구나 앞으로 얼마나 큰 가치를 창출해낼지는 아무도 몰랐다.''“맙소사…… 얘 좀 봐! 그 돈이 얼만데, 헌신짝 내던지듯이 줘버린다니? 너야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절대로 그렇게는 못해.”''“야, 이연경! 정신 차려. 그 돈이 어떻게 네 거냐? 솔직히 회사가 다 네 아버지 소유도 아니잖아. 왜, 우리나라 재벌들이 썩었다는 소리를 듣는 줄 아냐? 그게 다 경영과 소유라는 사업의 기본 개념조차 구분하지 못해서야. 은행에서 남의 돈 빌려다가 사업한답시고 이리저리 굴려서 이익 나오면 죄다 제 주머니에 집어넣고, 제대로 못해 손해보고 망하면 배 째라고 나뒹구는 인간들이 바로 재벌이다 그거지. 하기야 재벌은 망해도 삼대는 거뜬히 먹고산다더라. ''뭐, 회삿돈 빼돌려 딴 주머니 차는 놈들이니 오죽하겠냐. 난 그런 놈들이랑 면상 맞대고 앉아서, 그 인간들 호주머니 채워주는 일에 일조는 못한다. 알았냐? 그리고 너도 지평이 네 거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려라. 지평은 네 아버지 것도, 네 오빠 것도, 네 것도 아니야. 그건 주식을 소유한 주주들 몫이고, 지평에 소속된 모든 변호사들과 직원들 거다.”''분노로 부르르 떨고 있는 연경의 전신을 싸늘한 종빈의 시선이 훑고 지났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거침없는 조소와 무시만이 가득했다. 어쩌다 실수라도 해서 저 눈빛을 대하게 되면, 그녀는 섬뜩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치 그녀 자신이 기생충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분한 마음에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이제 더 이상은 이 꼴 같지도 않은 그의 잘난 척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터였다. ''솔직히 그녀는 살면서 돈 싫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단돈 몇 만 원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수백억의 돈에 콧방귀를 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너야말로 좀 솔직해져봐. 우리 아빠 회사가 싫다고 팔짝팔짝 뛰는 진짜 이유가 뭔데? 나랑 결혼하기 싫은 거겠지. 안 그래?”''“내가 언제 너랑 결혼하기 싫다고 그랬어? 할 말 없으니까 괜히 생트집을 잡고 싶나 본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그럼 대체 네 손가락에 끼고 있는 그 약혼반지는 뭐냐?”''“아마 네 처분만 바라고 있었다면, 여직 이깟 3부짜리 다이아 반지도 못 얻어 꼈겠지. 청혼도 내가 먼저 한 거나 마찬가지고, 약혼식도 우리 집에서 서둘러서 올렸잖아.”''“뭐, 이깟 3부?”''종빈이 차갑게 되물었다. 언짢은 기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의 미간 위로 주름이 깊게 패었다. 두 사람의 약혼반지를 하찮게 표현한 연경의 말로 인해, 그 잘난 자존심에 그만 금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제껏 참고 있었던 싸늘한 비웃음을 그에게 고스란히 되돌렸다.''“그래. 1캐럿은 고사하고 반 캐럿도 안 되는 것이 보석은 무슨 보석이라니? 지난번 생일날 우리 아빠가 해준 물방울 다이아하고 어디 비교나 되는 줄 알아? 하, 3부…… 진짜 우습다.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뿐이야. 그 쥐꼬리만 한 검사 월급 갖고 근사한 보석 하나 제대로 사줄 수 있을 것 같아? 어림없지. 암, 어림 반푼어치도 없고말고. 너랑 헤어지면 헤어졌지, 난 절대 궁상떨면서는 못 살아.”''“내가 계속 검사 임용을 고집하면 파혼도 불사하겠다, 그 말이냐?”''연경은 종빈이 언급한 파혼이라는 단어에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애초에 이런 극약처방까지 쓸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딱히 그가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솔직히 돈에 매어서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진 않아. 나 어렸을 때, 우리 엄마 툭하면 외갓집에다 손 벌리시곤 했어. 말이 좋아 판사지, 월급쟁이 판사가 벌면 얼마나 벌겠어. 그것도 촌구석 지원에 소속된 말단 판사였으니, 그 월급이라는 게 오죽 뻔했을까. 그러다 아빠가 변호사 개업하고, 또 법무법인체를 만들고 하면서 이제야 겨우 사람 사는 것같이 살게 되었단 말이야. 다시 그런 칙칙한 생활로는 죽어도 못 돌아가. 아니, 안 돌아가!”''주절주절 옛날이야기를 털어놓는 연경을 향해, 종빈은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녀가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이해하는 것과 그 생각에 동조하는 것은 엄연히 차원이 달랐다. ''갑자기 골치가 지끈지끈 아팠다.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다지 쉬울 것 같지가 않았다. 또 선뜻 내키지도 않았다.''“요즘은 판검사 월급도 그리 적지만은 않아. 사실 다른 공무원들에 비하면 많다고도 할 수 있어.”''“흥, 그렇다고 변호사만 하겠니?”''연경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물었다. 입술을 한쪽으로 샐쭉하니 일그러트리는 모양새가 도무지 설득당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종빈의 입에서 갑갑한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골머리가 욱신욱신 울리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일 지경인데, 이제는 아예 명치가 받쳤다. ''“검사가 되는 건 내 오랜 소원이라고 했잖아.”''“그럼 내 꿈은? 법조계를 완전히 떠나라는 것도 아니잖아. 단지 검사 대신 변호사가 되라는 건데, 날 위해서 그 정도도 못해주니?”''“그러는 너야말로 날 위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좀 자제할 마음은 없냐?”'성마르게 되묻는 종빈의 목소리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금세 연경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더니, 눈동자 속에서 시퍼런 불꽃이 이글거렸다. 아무래도 사치라는 표현에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따져 묻는 그녀의 언성이 높이 치솟았다. ''“너 지금 사치라고 했니?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먹고, 철마다 입고 싶은 옷가지들 조금 사고, 갖고 싶은 보석 몇 개 구입해서 갖는 것도 사치야?”'“그 먹고 싶다는 음식이 최고급 프랑스 요리고, 그 사고 싶은 옷가지가 몇 백을 호가하는 이탈리아제 물건에다가, 갖고 싶은 보석이 애들 주먹만 한 다이아라면 확실히 사치지.”''딱 잘라 사치라고 못박는 종빈을 향해 연경의 두 눈동자가 불을 뿜었다. 그녀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가 이런 식으로 막 나온다면, 그녀 역시 당하고만 있을 마음은 없었다. ''“내가 볼 때, 자기 여자한테 그 정도도 못해주는 남자라면 사내도 아냐! 맘먹고 찾아보면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라고…….”''“오호, 그래? 네 말마따나 나, 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이다. 그러니 사내 구실 제대로 할 놈 찾아가라.”''종빈이 배배틀린 어조로 이죽거렸다. 연경이 절대로 그를 놓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없고서야, 저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야말로 그의 속단이었다. 그녀는 가차 없는 코웃음을 날렸다.''“하! 그렇게 말하면 내가 겁이라도 집어먹을 줄 알았니? 너 사람 잘못 봤다. 나, 너보다 훨씬 더 괜찮은 남자 얼마든지 잡을 자신 있어. 결혼하자고 죽자 살자 매달리고 책임지라면서 강짜를 부리니까, 네 눈에는 내가 그렇게나 우습게 보이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아빠 회사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변호사도 죽어라 나한테 목매고 있다고. 이거 왜 이러셔?”''여봐란 듯이 연경은 한껏 턱을 위로 쳐들고서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까짓 엄포 몇 마디에 움찔해서 도망칠 종빈도 아니었다. ''“변호사 남편 노래를 부르더니만, 잘됐네. 이 참에 그 잘난 변호사한테나 가봐라. 나도 너한테 별 미련 없다.”''종빈의 폭탄선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집스레 치켜 올라가 있던 연경의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더 이상 턱이 떨리지 못하도록 입술을 있는 힘껏 앙다물었다. 벌겋게 핏발이 선 눈자위로 눈물까지 핑 돌았다.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했다.'그가 제발 자신을 버리지 말라면서 붙잡고 매달리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토록 쉽게 그녀를 밀어낼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다. 마치 헤어지자는 말을 내내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연경의 머릿속으로 언뜻 조막만 한 여자애 얼굴 하나가 스쳤다. ''''''1. 우 연 - 아무런 인과관계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2. 회 상 -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3. 상 처 - 몸을 다쳐서 부상을 입은 자리''4. 재 회 - 다시 만남, 혹은 두 번째 만남''5. 사 과 -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6. 평 행 - 두 개의 직선이나 평면이 나란히 있어 아무리 연장해도 서로 만나지 않음''7. 교 차 -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침''8. 음 영 - 그림자, 어두운 부분''9. 본 심 - 본디부터 변함없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마음''10.전 심 -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뜻을 이해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