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억이길 거부한 사랑''''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 안에서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던 시영은 하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커피 잔을 쓰러트릴 뻔했다.'“여전히 집중력 하난 끝내주는구나.”'시영이 노트북을 덮으며 밉지 않게 살짝 눈을 흘겼다.'“언제부터 앉아 있었던 거야.”'“약속시간 이후부터 쭈우욱, 언제 내 존재에 대해 눈치 챌 건지 시간을 보며.”'시영은 얼른 시간을 보았다. 약속한 시간으로부터 약 30분가량이 지나있었다.'“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하원하면 지각대장으로 유명하니까, 또 그런 줄 알고 느긋하게 열중한 거지 뭐.”'“뭐가 그리 바뻐?”'“응, 요번 리포트 낼 자료정리 1학년도 끝나 가는데 슬슬 목표를 잡아야 될 것 같아서. 아무래도 기업 쪽으로는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도 여자에겐 벽이 너무 높아. 그래서 내 전공을 살려 펜대를 잡아야 할까, 그럼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되나,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중, 아줌마처럼 잡지사 쪽도 생각중이고.”'“그만, 거기까지 머리아파. 너하고 난 먹는 음식도 별반 차이도 없는데 뇌구조는 정반대야. 공통점 하나 없는 우리가 십년 넘게 단짝이라니 정말 아이러니하다.”'“다르니까 친구가 된 거야. 서로 모자란 부분 메워주면서. 어머! 아직도 몰랐니? 진작 말하지. 내가 확실하게 정의를 내려 줬을 텐데. 참! 하원이 너 글 써서 응모한다고 안했어? 국문학과 학생들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는 꿈 아니던가?”'“음 생각은 많은데 영 잡히지가 않네. K방송사에서 주체하는 공모전엔 모두들 관심이 많으니까, 아마 경쟁도 치열할 거야.”'“혹시, 아니? K대하고 K방송사하고 무슨 인연이 있을지.”'“무슨, 어디 엮을 데가 없어서 그런데 기대를 거냐.”'“참! 너 소식 들었어? 우리 고등학교 때 농구부코치님. 이번에 결혼 하신다더라. 아마 이번 주 토요일일걸. 그 선생님 하유미 선생님한테 목을 매더니만. 아무리 그 두 사람이 엮이는 건 상상이 안 된다. 왕비와 머슴정도 그림이 떠오르니. 그런데다 여름방학 끝나고 그렇게 갑자기 떠날 줄 누가 알았대. 아마 강우혁 선생님이 학교 그만두니까, 따라간 게 분명해. 두 사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벌써 3년 전 일이네. 세월 진짜 빠르다 그치? 아! 미, 미안. 하원아, 너 괜찮니? 오늘따라 내가 왜 그런 다냐. 까마귀고기를 먹어도 유분수지.”'“너희 집에서는 그 귀한 까마귀반찬도 다 해주나보다. 아줌마 요리솜씨가 그 영역을 날로 확장해 가시나보네.”'“…하원아.”'“괜찮아.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그 까마귀 반찬 나도 좀 먹었으면 좋겠다.”'“…….”'“네가 지금까지 조심해준 것도 알아. 솔직히 말하자면…아파.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선생님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 걸 보니 후훗! 나도 꽤나 늦된 앤 가봐. 에라! 인심 썼다. 이제는 절대로 조심하지 마.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말고. 자꾸 들어야 면역이란 것도 생기지. 네 말대로 그 두 분 혹시 결혼했을지도 모르지. 분하지만 참 잘 어울렸으니까. 인정할건 인정하자.” '“그래 그러자.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난 불만 없지. 하유미 선생님이 28살이니까 강우혁 선생님은 32살 됐겠다. 어쩐지 나도 보고 싶네. 어떤 바보가 하도 목을 매서 나름대로 힘든 학창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하원은 화제를 바꾸고 싶은 생각에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시영의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연한척 가장했지만 그리움과 원망이 울컥 솟아나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가슴이 꽉 막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