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윽……. 머리야.”'눈살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난 민우는 한손으로 이마를 지그시 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간밤에 너무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작정을 하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통에 민우의 잔은 비워져 있을 틈이 없었다.'“윽. 머리야.”'늘 일어나는 시간이라 저절로 눈이 떠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 있는 터라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술 먹은 다음날이면 하루 종일 생수를 입에 달고 다녀야 하는 그는 눈을 뜨자마자 심한 갈증으로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벌컥대는 소리와 함께 입술 아래로 흘러내리는 차가운 감촉이 가슴을 지나 맨발등위에 떨어졌다. 여전히 지근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민우는 다시 침대로 걸어갔다. '“아욱. 머리야.”'습관처럼 흘러나오는 말이 민우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안 순간 반쯤 감긴 눈이 놀라 동그랗게 커지면서 그도 모르게 짧은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넘기며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 낯선 여자의 입에서도 한 옥타브 더 높은 비명소리가 튀어져 나왔다.'“너, 너 누구야?”'“그러는 당신은……. 악.”'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는 여자의 행동에 민우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그제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언제부턴가 민우는 잠을 잘 때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애초부터 잠옷이라는 것은 그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늦잠을 자는 날에는 식구들 누구도 민우의 방에 들어오는 걸 꺼려했다.'“그만 내숭 떨고 일어나시지.”'“…….”'“그쪽도 피차일반인 것 같은데 웬 내숭.”'민우의 말에 여자는 깜짝 놀라며 이불 속을 들춰 보았다. 그녀 역시 팬티 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어, 어떻게 된 거예요?”'“그걸 왜 나한테 묻지?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지. 여기가 바로 내 집이라는 거야.”'“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그러니까 이 침대에 있는지.”'“몰라, 아으 머리야. 난 더 자야겠으니 알아서 나가든가 아님 더 자든가.”'하지만 여자는 침대 시트를 잔뜩 움켜쥐고 목까지 끌어 올린 채 간밤의 일들을 기억하려고 애쓰는지 이불 속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민우는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침대로 올라가 벌러덩 누워버렸다.'“저리가요.”'“누구보고 저리 가라는 거야? 붕어머리야? 방금 말했잖아. 여긴 우리 집이라고. 빨리 나가든지 아님 이불이라도 내놔. 귀찮게 하지 말고.”'“옷, 옷이 어디 있는데요?”'“그걸 왜 나한테 물어? 직접 찾아 봐. 셋 세고 나면 이불을 가져올 테니까 알아서 움직여. 하나.”'민우의 입에서 하나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여자는 얼굴을 내밀고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그녀의 옷은 침대 가까이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