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우리 결혼하자!”' 그 말에 마시고 있던 키위 주스가 주훈의 얼굴에 처참히 뿌려지고 말았다. 자신의 타액과 섞인 싱그러운 초록색의 키위 입자를 보며 정원은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아뿔싸, 저 깔끔이다 못해 결벽증까지 있는 새끼한테 먹던 키위주스를 뿌렸으니 이제 죽은 목숨이구나.’' 그렇게 생각한 정원은 재빨리 날아올 주먹을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수십 초를 기다려도 기다리던 주훈의 주먹이 날아오지 않음을 알고는 살며시 눈을 떴다.' 주훈은 이미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던 키위 주스를 앞에 있던 휴지로 깨끗이 닦아 놓은 상태였다. 정원는 필시 주훈이 미친 거라고 생각하며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러다 이내 뭔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12년을 알아오면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덩달아 정원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강주훈이라는 사람은 평상시에도 유독 자신에게만 장난을 치고 그것을 즐겼으므로 이번 역시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진담으로 받아 들였다가 놀림 당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야,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봐. 요즘 가는귀가 먹었나. 왜 이렇게 말썽이야. 아무래도 이비인후과에 가봐야겠…….”' “결혼하자고.”' 또 다시 간단명료하게 말을 마친 주훈은 뚫릴 듯한 눈으로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원은 몸을 살짝 낮추며 그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29년 동안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농담은 처음이었다. 정원은 머리 옆으로 손을 들어 올려 검지로 너 미쳤나는 듯 원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다 못해 절망스러운 정도였다. 주훈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너 돌았냐?”' “지극히 정상이야.”' “그런데 그런 말을 나한테 할 수 있어? 야,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과하다?”' “너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건 충분히 맞는 말이었다. 주훈은 요즘에 그 잘나간다는 치과의사인데다 집은 대대로 땅 부자가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주훈의 모는 커다란 종합병원의 원장이었으며 주훈의 부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외식업체의 사장이 아니던가. 거기다 삼형제중 막내였으니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다.' 허나, 강주훈이 누구냐.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끊이지 않는 스캔들의 주인공으로서 한 달에 여자가 세 번은 바뀐다는 알아주는 바람둥이였다. 물론, 지금도 그의 애정행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 정원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농담 아니야. 장난도 아니고. 나 지금 어느 때보다 진지해.”' “그래. 네 표정을 보니 장난이 아닌 건 알겠다. 그런데 뭐라는 거야.”' “너 스물아홉이야. 곧 서른이라고. 그런 똥차를 누가 데리고 가려고나 하겠어? 그런다고 번듯한 직장도 없는데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얼씨구. 잘한다라는 표정으로 정원은 아니꼬운 듯 주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