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one''''중학교 때부터 몰아친, 폭풍과도 같았던 나의 로맨스 소설 사랑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사그라지지 않는 로맨스 소설에의 갈망을 어느 누구도 막지 못했던 것이다.'물론 쓸데없는 책만 본다는 엄마의 갖은 구박과 그런 것만 보다간 시집 못 간다는 남동생의 우애 어린 협박,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는 친구들의 걱정과 충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잔소리로 얼룩진 그 길고 고단한 시간을 나는 아 - 주 잘 버티어냈다. 인간 승리란 아마도 나를 두고 생겨난 말이 아니었나… 할 정도로 말이다.''그 빛나던 여중 시절, 처음 맞이했던 춥디추운 겨울방학의 어느 날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로맨스 소설에 입문한 나는 그 환상의 로맨스에 속절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사춘기 소녀 이기진의 로맨스 소설을 향한 열망은 지금 생각해도 참 심했었다.'3학년이 되어서는 평소 한심하다 생각했던,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된다고 토로하는 애들처럼 로맨스 소설을 읽지 않는 아이와는 아예 말도 하기 싫어하는 중독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면 3학년 7반 전체가 나의 동지요, 친구였다는 것이다. 로맨스 소설로 아주 똘똘 뭉쳐진…….'당시 3학년 7반을 휩쌌던, 로맨스 소설을 매개로 한 단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단합의 장은 다름 아닌 야간 자율학습시간의 교실이었다.'학생과 학부모, 선생님 모두 고등학교 입시 때문에 무슨 야간 자율학습을 하느냐고 반대하였지만 개교 이래 최고의 독불장군으로 꼽히시는 교장 선생님의 우격다짐으로 말미암아 당시 3학년 전체는 야자라 일컬어지는 방과 후 자습을 했어야 했다.'우리도 처음에는 야자가 너무 싫어 담임 선생님께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이 통하지 않을 땐 땡땡이도 불사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땡땡이를 근절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야자 직전에 실시되는 담임 선생님의 인원 파악과 야자 내내 감독 교사의 감시 아래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자습을 해야 했다.'그러던 어느 날, 야자 도중에 한 학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야, 야! 거기 쟤랑 쟤 좀 깨워라. 내가 화끈하고 재미있는 거 읽어 줄 테니까 잘 들어!”'하더니 몰래 읽고 있던 로맨스 소설의 ‘메이킹 러브신’을 읽어 주는 것이 아닌가. 19세 미만 구독 불가 판정이 내려져도 할 말 없을 그 신의 농염함보다 남이 읽어 주는 것을 듣는, 설명할 수 없는 재미와 기대감에 반 전체가 술렁였다.'그 일로 우리는 야자야말로 신이 내린 환희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는 아무도 야자를 빼먹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