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한미그룹 노 회장이?”'남자는 겨우 입술만 축이는 둥 마는 둥 술잔을 서둘러서 체리원목 카운터 위에 내려놓았다. 사레에 들린 것도 아닌데 연거푸 마른기침을 밭아내는 품새가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스툴에 앉은 거구의 사내가 빙글빙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흔들었다. 독한 스카치위스키 속에 폭 잠긴 투명한 얼음조각들이 단단한 유리벽에 부딪혀 챙챙 소리를 내면서 휘돌았다.'“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그 양반 여성 편력이야 옛날부터 알아줬는데. 방송기자가 어째 나보다도 더 몰라?”'“노 회장 씨 뿌리는 재주야 익히 들었지. 그게 다 소싯적 얘기라고 생각해서 문제지. 암튼 좀 의외다. 한창 젊었을 때야 그렇다지만 벌써 일흔이 넘었잖아?”'“일흔셋.”'“거 참! 그 나이에도 가능한가 보네. 늙은이가 힘도 좋아요.”'“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없잖우. 지폐 다발로 불쏘시개를 해도 될 만큼 돈이 많은데 뭐가 걱정이겠어? 만날 몸에 좋다는 걸로만 먹고 마시고. 우리 같은 평민들이야 꿈도 못 꿀 온갖 산해진미에, 불로초 같은 귀한 약재들까지 죄다 처먹을 테니 그냥 회춘하는 거지. 저번엔 애들 셋을 한꺼번에 들여보내라고 하더라고. 아마 그 영감탱이 백 살이 돼서도 밤마다 아랫도리가 볼끈볼끈 솟을걸.”'“셋을 한꺼번에? 그 나이에 쓰리피도 아니고 포피를 뛰었단 말이지. 그래서 지난겨울 태국에서 뱃속에 든 장기들 몽땅 새로 개비하고 왔다는 괴소문이 나돌았던 거였군.”'휘둥그렇게 치켜뜬 눈동자를 와실와실 굴리던 남자가 돌연 말꼬리를 흐리더니 부러운 양 일장 한숨을 토해놓았다. 그러자 거구의 사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낄낄낄 음충맞은 웃음을 흐드러지게 피웠다.'“그 소문의 주인공이 노 회장이었어? 돈이 좋긴 좋네. 자동차 부품 교체하듯 사람 장기까지 노쇠하면 새것으로 싹 바꿀 수도 있고.”'“넌 그걸 믿냐?”'“그럼, 형은 안 믿으우?”'“글쎄…… 반신반의하는 거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도 이식할 장기가 없어서 발만 동동거리는 마당에, 그깟 젊어지겠다는 욕심 때문에 장기이식을 감행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돈다발이 썩어나는 인간이 뭔 짓인들 못할까 싶기도 하고. 네 말마따나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없으니까. 젠장! 로또신은 뭐하나 모르겠다. 나한테 돈벼락 좀 내려주지 않고.”'남자가 북북 인상을 긁으면서 술잔을 들이켰다. 그는 거반 한 잔에 가까운 스카치위스키를 단숨에 다 비우고 달랑 얼음 세 개 남은 유리잔을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크리스털 술잔 속에서 녹다 만 얼음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튀어 올랐다가, 통통통 미세한 시차를 두고 떨어졌다. '“내가 그 돈벼락 맞게 해줄까? 나중에 형 도움이 필요해지면 모른 척 말고 나 좀 도와줘. 그럼 섭섭지 않게 생각해줄게.”'“이번엔 노 회장한테서 한몫 챙기려고?”'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가득하던 남자의 안색이 돌변했다. 알코올 기운으로 혼탁하게 풀어진 눈동자를 새삼 번뜩이고 앉은 남자의 음험한 모습을 지켜보며, 거구의 사내는 술잔을 손에 든 채 또다시 알 수 없는 웃음만 비식비식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