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용 버너 위에 코펠을 올려놓은 태은은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컵 안에 커피를 알맞게 넣은 후, 목표물을 찾아 두 눈을 크게 뜨고 움직였다.'찾았다!'태은은 힘들지 않게 목표물인 재민을 찾고는 배시시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찾지 못할지 몰라도 태은에게 재민은 어디에 있어도 찾을 수 있는 존재였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재민의 숨소리만으로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어찌 뒷모습도 저리 멋지냐. 조금만 덜 멋지지.”'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욕을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야외 촬영에 전혀 멋질 수 없었다. 물론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씻고 있다고 해도 예전만큼 멋있거나 말끔하지는 못했다.'갸름하게 생긴 얼굴에 약간은 어두워 보이는 짙은 검은 눈동자, 오뚝한 콧날은 옆에서 봐도 높은 것이 드러날 정도였다. 그리고 분홍빛의 입술은 태은의 가슴을 뛰게 만들 만큼 매혹적이었다.'“재민 씨, 서태은이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 애타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세요.”'“태은 씨, 뭔 혼잣말을 그리 중얼거려. 비 맞았어?”'태은이 열심히 재민에 대한 마음을 나타낼 무렵 소품을 담당하는 스태프가 다가와 툭 치고 지나쳐 갔다. 그제야 태은은 정신을 차리고 코펠에서 끓고 있는 물소리를 들었다. 종이컵에 물을 알맞게 붓고 태은은 정성과 마음을 담아 커피를 저었다. 종이컵 두 개를 손에 든 태은은 재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재민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태은을 바라봤다.'태은의 작은 얼굴은 초롱초롱하고 맑은 큰 눈으로 인해 더 돋보였다. 앵두같이 붉고 작은 입술까지 조화를 이뤘다. 옷차림과 달리 생김새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는 태은을 여성스럽게 돋보이는 존재였다.'푸른 바다에는 붉은빛의 저녁노을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흰 모래가 깔려 있는 백사장 위로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가냘픈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조금만 거세게 불어도 휙 하고 날려갈 것같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백사장 한편에 앉은 재민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커피 한잔하세요.”'넓고 항상 쫙 펴져 있던 당당한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것을 바라보며 태은은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재민의 옆으로 다가갔다. 재민에게 커피를 한 잔 건네주며 태은은 그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재민은 컵을 받아 들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이왕이면 고맙다거나 커피가 맛있다는 말도 해주면 안 돼요?”'태은은 재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요구했다. 그런 태은의 얼굴을 외면하며 재민은 시선을 백사장 위를 걷고 있는 여자에게로 옮겼다.'“해양 생태계를 촬영하러 온 사람들이 종이컵을 사용하면 안 되는 거죠?”'“설거지할 자신 있으면 컵에다가 마셔요.”'“감독님이 컵 씻어주시면 제가 오늘 당장 종이컵 싹 치워 버릴게요.”'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재민은 더 이상 태은의 말에 답을 하지 않았다. 말을 조금이라도 더 잇고 싶은 태은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말이 뚝 끊기자 태은도 시선을 바닷가 쪽으로 옮겼다.'재민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백사장 위를 거닐고 있는 연화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뛰어가서 연화의 뒤에 서서 걷고 싶었다. 넘어지면 세워주고 비틀거리면 넘어지지 못하게 잡아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재민은 그러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연화의 모습을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연화 씨 뒤를 따라가서 걷고 싶으시죠?”'재민은 순간 마음이 들키자 인상을 찌푸리며 옆에 앉은 태은을 쳐다봤다. 독심술을 하는 것마냥 자신의 마음을 콕 집어낸 것이 재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태은이 불편해졌다.'“백사장에 새겨지는 연화 씨 발자국이 꼭 하 감독님의 마음 같네요.”'한술 더 뜨는 태은의 말에 재민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대체 이 여자는 뭐기에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콕 집어내고 참견을 하는 것인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남의 감정에 왜 참견하는 겁니까?”'불편한 것을 참지 않고 재민은 태은을 향해 독을 쏘듯이 물었다.'“제가 하재민 씨 좋아하니까요.”'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태은의 대답에 재민은 놀라 종이컵을 떨어트릴 뻔했다. 생긋 웃던 태은의 얼굴이 순간 진지했기에 재민은 더 놀랐다.'“장난치는 겁니까?”'“지금 제 얼굴이 장난치는 걸로 보이세요?”'생글거리며 웃으며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지했기에 재민은 이 상황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이렇게 어이없게 하는 고백을 재민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황당했다.'“관…….”'“에이, 차였네!”'재민이 말을 하기도 전에 태은이 막아버렸다. 말하지 않은 마음을 먼저 읽어버리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태은의 모습을 재민은 멍하니 바라봤다.'“하재민 씨! 언젠가는 나의 심장에 빠질 거예요!”'태은은 손가락을 총 쏘는 모양으로 하고는 재민의 심장과 자신의 심장을 번갈아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