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일본식 집 안은 조용한 침묵과 싸늘함에 싸여 있었다. 마루 앞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숨을 무겁게 내쉬며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랐다. '익숙한 듯 거침없이 걸을 때마다 왁스칠해서 미끌미끌한 마룻바닥이 삐걱삐걱 내는 소리에 그의 얼굴은 못마땅함으로 점점 더 굳어져 갔다.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으면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지, 왜 그러고 있지?｣'숨을 한번 크게 내쉰 다음, 그는 헛기침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이즈미 님. 이제 막 돌아왔습니다.｣'검은색 기모노를 차려 입은 남자는 아직도 ‘이즈미’라는 호칭이 맘에 들지 않는지 슬쩍 미간을 구겼다 폈다. 그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가 두 잔 놓여 있었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준후는 그저 무릎을 꿇고 앉은 남자를 무심히 바라보며 이제부터 남자가 내놓을 말을 가늠하고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있는지라 아직 그분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큰 잘못을 한 사람처럼 온몸을 움츠렸다. 그리 작은 몸집이 아닌데도 그가 너무도 작게 보였다. 검은색 기모노를 입고 나른하게 앉아 있는 준후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초콜릿이 뚝뚝 떨어져 내릴 듯 달콤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래서?｣'｢이틀만 더 시간을 주시면 그분이 살고 있는 주소지까지 찾아내겠습니다.｣'｢내일 이 시간까지 가지고 오도록 하지.｣'준후의 목소리가 멈추자 남자는 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목숨과 바꾼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그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가 나가고 혼자 방에 남은 준후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쉽게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하여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는 한결 같았다.''‘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아직도 아버지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준후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튀어나올 것 같은 덩어리를 삼키며 테이블 위에 놓인 싸늘하게 식어 버린 녹차를 바라보았다. '5년 전 그날,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주어도 모자란 연인을 버렸다. 오로지 그녀만을 위해 좋은 대학과 엘리트적인 미래를 설계했었는데, 급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은 자신을 수렁으로 끌어내리고 말았다.''*''13살 겨울,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일본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아버지 나라의 언어라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가르쳐 주셨던 그 언어만으로 살아가는 나라. '일본에 도착한 어머니의 얼굴에는 기대와 묘한 설렘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끝낸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서 간 곳은 아담한 정원이 있는 이 층 집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준후와 눈높이를 맞추며 웃어 보였다.'“준후야, 이제부터 여기가 우리 집이야.”'그녀의 얼굴에는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 웃음이 무엇 때문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전에 있던 곳에서보다 더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은 이방인을 기피하는 견제의 눈빛들이었다. 다가오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들의 눈에는 불안과 혐오감이 가득했다. 그래서였을까, 이곳에 온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어머니의 모습은 13년 동안 봐왔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얼굴에 가득한 행복한 웃음은 이제껏 어머니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웃음과는 확연히 달라 준후는 너무 낯설었다.'어머니의 모습이 조금씩 화려해지고 점점 외박하는 날이 늘어나던 어느 날, 갑자기 시골의 마을에서 일본의 중심지인 도쿄 신주쿠 고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 앞으로 가부키초의 최고급 살롱과 클럽이 몇 개 생겼다. 그것으로도 어머니를 쉽게 보는 사람들은 없었고, 그녀의 옆에서 도와주는 검은색 양복 입은 남자들의 모습은 다른 뒤를 봐주는 사람들과는 격이 달라 보였다. 사람들 역시 함부로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