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의 실수는 결국 소송으로 까지 가고 말았다. 환자가 재수 없게도 정계의 유력인사의 친척이었고 그 불똥은 병원장한테까지 튀어서 이 늦은 밤에 원장까지 다 출동해 있었다.'“정 교수, 이 건에 대해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병원 담당 변호사가 마치 그의 책임이라는 듯 물었다. 저편에는 오히려 뻔뻔스럽게도 박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것에 더 어이없는 정우현은 차갑게 대답했다.'“박 선생님이 제 학생이거나 혹은 제 밑의 인턴이었다면 저도 얼마간의 책임이 있습니다만, 외부에서 초빙해온 전문의한테 아무리 담당 과장이라도 할지라도 뭐라고 따로 오더를 내릴 일도 없거니와 전문의쯤 되는 분이 본인의 시술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제가 안과 담당과장이라는 직함이외의 뭔가 또 다른 책임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입니까?”' “정 교수…….”' 잠자코 있던 병원장은 한마디 하더니 끝을 잇지는 못했다.'“어떤 병원이 망막내 출혈과 망막외 출혈도 구분 못하는 분께 전문의 자격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스카우트에 관여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원장님?”' 그의 말 한마디는 곧 무겁던 회의장을 들쑤셔놓기에 충분했다.'“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요?”' 박 선생의 안색이 험악해졌고 주변에서도 저건 너무하다 싶다는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어디까지가 제 책임인지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아무대학병원의 어느 안과의사든지 붙들고 한번 물어보시죠. 저런 간단한 수술까지 담당과장이 일일이 오더를 내려야하는지…….”' 난처해진 병원장의 얼굴이 보였고 그 옆에 언제 들어서있는지 정장을 잘 차려입은 서 선생의 차가운 표정이 보였다. 아직 그와의 관계가 그녀의 뜻대로 안 되고 있는데 아버지를 난처하게 하는 그에 대한 불만이 서려있는 표정이었다. 정우현은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고 채용된 박 선생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 오히려 반문하고 싶은 심정을 토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험악해진 분위기를 정리하려는 듯 변호사가 중재를 나섰다.'“정 교수님…… 좋습니다. 책임에 대한 문제는 뒷전으로 하고 우선 수술방법에 대해서, 어디까지가 과실인지 전문가적 입장에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 오시라고 한 것은 그것에 대한 문제가 더 시급하기 때문이어서 입니다. 몇%까지의 과실로 상계하실 수 있겠습니까?”' 정우현은 힐끗 수술보고서와 예후 차트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볼 필요도 없이 100% 시술자 과실입니다!”'“정 교수!”'병원장의 고함소리가 회의실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 진성은 만원도 안 되는 택시비 때문에 잔돈이 더 많아진 차비를 들고 터덜터덜 자신의 좁디좁은 원룸에 들어서자 냉기가 느껴졌다. 제대로 난방도 안 해주는 곳인지라 온풍기를 틀고 주섬주섬 싸들고 온 남은 반찬들을 냉장고에 넣고는 재킷만 벗어던지고 또 침대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새 휴대폰을 꺼내서 한참동안 들여다보고는 히죽히죽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노트북을 켜기 시작했다. 저쪽 휴대폰의 사진과 그동안 찍은 사진을 모조리 새 휴대폰에 넣기 위해서 였다. 진성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로딩을 초초하게 지켜보면서 오늘 일어난 일들이 정말로 사실일까 싶은 생각에 아침부터의 생각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기억이 새록새록 하면서 모든 것은 마치 하늘에서 뭔가 커다란 돈 보따리가 뚝 떨어진 것보다 더한 지독한 행운이 아닌가 싶었다. 쳐다만 볼 수 있어도 좋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그분과의 이러한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정말로 원한다면 영원히 그 곁에 있고만 싶었다. 그 순간 진성의 낡은 휴대폰에는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사파의 호출이 계속 되고 있었지만 오늘 이 입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넣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커피 향과 그분의 체취만 있으면 족했다. 조만간, 주사파에서 제명될 것이 분명했지만 진성은 그것이 조금도 아쉽지 않은 거 보면 여자들은 남자가 생기면 세상쯤이야 배신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인 듯싶었다. 그 무엇과 그분을 비교조차 할 수 있으랴. 사진이 화면가득 뜨기 시작하자 진성은 또다시 정신병자처럼 히죽히죽 웃음만 삼키기 시작했다.' '' 아침에 눈을 뜬것은 낡은 휴대폰의 벨소리 때문이었다. 진성은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들고는 콱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여보세요…….”'<아침에 긴급회의다. 30분 내로 오도록…….>'“악!”'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저쪽에서는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대체 누가 건 것인지도 모르는 전화. 진성은 새 휴대폰을 보았지만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다. 그 밤중에 나간일이 뭔가 잘못됐을까 걱정을 하다말고 진성은 얼른 전속력으로 욕실로 가서 대충 세수만하고 나가야만했다. 기사마감이 내일인데 이 아침부터 전화질을 한 것은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