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앤은 한 손을 들어 그의 왼쪽 가슴에 가져갔다. 조용히 지무칸과 자신의 심장소리에 집중했다.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그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때때로 박자를 잃고 약해지는 듯하다가도 그녀의 심장소리에 다시 따라오곤 했다. 더 이상 상처로부터 출혈은 없었다. 천천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빈민가 뒷골목에서 처음 그와 눈이 마주친 이후로 고작 세 번의 만월을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 세 번의 달이 차고지는 동안 자신의 삶은 그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침없이 다가오는 그로 인해 처음에는 두려움과 거부감 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소중하게 지켜오던 자신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그런 자신을 조금의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하는 그에게 반발심이 일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가슴 한 구석을 밀고 들어온 그가 자신의 심장의 주인이 된 것은. 나길의 칼날에서 자신을 살린 그때부터 일까. 아니면 어둠의 기운과 싸우면서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던 그의 모습을 보고 나서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그녀를 놓아주려 했던 진심을 본 그때부터 일까.'딱히 언제부터라 말할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그가 없는 삶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의지하고 믿었던 이들은 하나씩 떠나갔다.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 자식인 그녀를 놓고 떠나버린 부모님. 아무 준비 없이 그녀를 타지에 혼자 남겨두고 가버린 할아버지. 울어도 달래줄 이도, 힘들 때 기댈 곳도 없었다. 혼자 그렇게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려했다. 그래도 이 땅 위에 살다간 흔적은 남겨야겠기에, 그 의미를 찾아 어려운 이들을 돕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도움이 필요했고, 쓸쓸한 삶일지라도 살아야 할 의미가 되어 주었다. '그런 그녀의 삶 가운데 지무칸이 들어섰다. 다가오지 못하게 밀어내어도 보고, 도망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보듬어준 이었다. 무조건 밀어붙이는 자신 때문에 마미앤이 힘들어 하자, 그녀의 꿈과 의지를 존중해주려 자신의 본능조차 억눌렀다. 무우족의 사내들은 본능적으로 소유욕이 강하고 독단적이라 했다. 특히 그들의 그런 성품은 ‘운명의 상대’를 만났을 때 유감없이 발휘된다고 했다. 어찌 그렇지 않을까. 자신들의 생명과 영혼이 이어져 있는 존재들인데. 어둠의 기운과의 힘든 싸움에도 그녀에게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은 그였다. '“지무칸, 하지만 전 당신보다 훨씬 이기적인가 봐요. 당신과 제 목숨을 맞바꾸어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둘이 함께 더 오랜 세월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용감해지려고요. 우리 아이들도 많이 낳고, 우리를 사랑하고 또 우리가 아끼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요.”'마미앤은 천천히 일어서 기대어 앉은 지무칸을 마주보고 무릎을 꿇었다. 연못에서 피어오른 수증기가 그의 검은 피부 곳곳에 방울져 맺혀있었다. 또르르르…… 물방울 하나가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신께 바치는 기도를 위해 두 손을 모았다.'“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신이시여. 오늘 당신 앞에서 두 영혼이 하나 됨을 고합니다. 둘이되 하나인 저희 두 사람이 신의 은총으로 다시 만나 합일을 이루려 합니다. 이 성스러운 의식의 증인되시고, 저희의 영혼을 들여다보셔서 조금도 거짓됨이 없음을 확증하여 주옵소서. 저 마미앤은 당신께서 예정하신 반려 무우족 지무칸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아무 의심이나 망설임 없이 그의 영혼과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이후 저희 둘은 둘이되 둘이지 않고 신의 품 안까지 하나이게 하옵소서. 생명의 시작은 각각이되 그 끝 날은 함께이게 하시고, 살아서나 죽어서도 다시는 떨어지는 날이 없게 하옵소서. 서로에게 어둠 속 불꽃 되게 하시어 어둠의 기운 가운데도 서로를 인도하여 생명의 빛으로 이끌게 하옵소서.”'지난 몇 주간 연습하여 온 ‘합일의 맹세’를 또렷한 목소리로 읊어나갔다. 마미앤은 자신의 입술을 떠난 맹세의 말들이 하나하나 작은 끈이 되어 자신의 영혼에서 그에게로 뻗어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닥 가닥의 실들이 자신의 몸과 영혼을 돌아 묶고, 그의 영혼의 허락을 기다리며 허공을 헤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는 듯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미앤은 자신의 오른 손에 들린 작은 검으로 왼 손 바닥을 길게 그었다. 그 모든 과정을 차분하게 밟아가는 그녀의 어디에도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길게 그은 상처에서 핏방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오른 손 검지에 그 피를 묻혀 그의 왼쪽 가슴 심장이 자리한 곳에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갔다. 그녀의 피로 써내려간 이름이 완성되자, 글씨가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사라졌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그의 심장에 새겨진 것이다. '“……으악…….”'마미앤의 이름이 서서히 안으로 쓰며들어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쯤이었다. 그때까지 의식이 없던 지무칸의 전신의 굳어지고, 그의 머리가 뒤로 재껴지고, 커다란 비명소리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탁한 검은 기운이 두 눈을 덮고 있었다.'“이대로 끝날 수 없어!”'나이만의 경고대로 지무칸 안의 어둠이 깨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 '“……네 년이…… 기어코…… 일찍 없앴어야 했는데…….”'갑자기 지무칸의 커다란 두 손이 앞으로 뻗어 나왔다. 마미앤이 그 손길을 피해 뒷걸음질 쳤다.'“헉!”'지무칸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두 손으로 그녀의 가는 목을 감싸 쥐었다. 숨이 막혀왔다. 억센 힘에 금방이라도 목뼈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조금씩 눈앞이 뿌옇게 변하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온 몸이 붕 뜨는 것 같더니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지, 지무…… 칸…….”'갑자기 목을 조르고 있던 손이 사라지고 공기가 페로 밀려들었다. 가슴이 타는 것같이 아팠다. '“학……학…….”'겨우 눈에 초점을 맞추고 황급히 눈으로 지무칸을 찾았다. '“지무칸! 정신 좀 차려 봐요, 지무칸!”'그의 몸이 물에 떠 있었다.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겁에 질린 마미앤이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물 속을 헤치고 다가갔다. 벌써 오래 전에 젖어버린 옷자락이 그녀의 몸에 감겨 움직임을 둔하게 했다. 그의 두 눈은 다시 굳게 감겨져 있었다. '“아……지무칸…….”'“마미앤…….”'약하긴 하나 틀림없이 그의 목소리였다.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마미앤의 이름이 성지 안 암벽에 작게 울렸다. '“하…… 지무칸…… 정신이 들었군요…… 흑…….”'그가 힘들게 한 손을 들어 내려다보고 있는 마미앤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천천히 몸을 세워 바닥에 두 발을 대고 일어선 그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미앤이 그 손을 맞잡자, 그대로 몸을 틀어 물을 벗어났다. 연못의 가장자리에 올라선 그가 그녀를 끌어올려 자신의 앞에 세웠다. 그의 맑은 회색빛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시야가 흐려졌다. 그가 천천히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당겨 안았다. 마미앤은 깊게 숨을 들이마셔 그의 향기로 자신을 가득 채웠다. 그가 손을 들어 마미앤의 어깨를 잡고 자신으로부터 밀어냈다. 그의 뜻밖의 행동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곧 한 걸음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신이시여. 오늘 당신 앞에서 두 영혼이 하나 됨을 고합니다. 둘이되 하나인 저희 두 사람이 신의 은총으로 다시 만나 합일을 이루려 합니다. 이 성스러운 의식의 증인되시고, 저희의 영혼을 들여다보셔서 조금도 거짓됨이 없음을 확증하여 주옵소서. 저 지무칸은 당신께서 예정하신 반려 마미앤을 사랑하고, 아끼며, 아무 의심이나 망설임 없이 그녀의 영혼과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이 후 저희 둘은 둘이되 둘이지 않고 신의 품 안까지 하나이게 하옵소서. 생명의 시작은 각각이되 그 끝 날은 함께이게 하시고, 살아서나 죽어서도 다시는 떨어지는 날이 없게 하옵소서. 서로에게 어둠 속 불꽃 되게 하시어 어둠의 기운 가운데도 서로를 인도하여 생명의 빛으로 이끌게 하옵소서.”'자신의 회색빛 눈으로 마미앤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그가 ‘합일의 맹세’를 했다. 함께 묶인 눈길을 떼지 않고 허리춤에서 자신의 단검을 꺼내 손바닥을 그었다. 자신의 피를 묻힌 단검을 멀리 집어던지고, 천천히 마미앤의 드레스 앞자락의 여밈을 풀었다. 곧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이 드러났다. 자신의 피를 묻힌 손끝을 가져다 그녀의 왼쪽 가슴 위에 그의 이름을 써내려갔다. '“아…….”'불꽃이 한 순간 확 일었다 사그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사람에게서 뻗어 나온 보이지 않는 끈들이 서로를 감싸는 듯했고, 단단한 기운이 둘을 하나로 묶었다. 한 개의 심장이 나뉘어져 두 사람의 가슴 속에 자리하고 나란히 뛰는 듯했다.'“마미앤, 사랑해. 나와 영원까지 같이 해줘. 내 심장의 주인.”'그의 따뜻한 입술이 내려와 마미앤의 작은 입술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