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 롤 로 그'''혁과 연락이 끊긴 지 어느새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아침잠 많은 준희를 위해서 매일 모닝콜을 해주고 식사 거르지 말라며 때마다 전화해 확인하고 아무리 늦게 퇴근해도 꼭 준희의 얼굴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전화로 잠들 때까지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 주며 행복한 꿈속으로 이끌어 주던 너무나 자상했던 혁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와 사랑을 나누었던 그의 공간마저 없었다면 정말 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아침에 준희의 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그가 사라지고 꼬박 2주를 그의 체취가 남아 있는 오피스텔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렸었다. 소영이 화를 내며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준희는 아마 한 달이 넘는 지금까지도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그와의 추억이 있는 공간에서 아직까지도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바보같이 그러고 있지 말고 차라리 직접 찾아보라는 소영의 말에 정신을 차린 준희는 혁이 다니던 회사로 전화를 했지만 그만뒀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유일하게 알고 있는 혁의 친구이자 자신의 선배인 호준을 찾아갔지만 호준은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어 만날 수가 없었다. '준희는 자신이 사랑하는 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너무도 없었다는 사실에 좌절과 막막함을 느꼈지만 혁이 돌아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거라 믿으며 기다렸다. 아니 막연하게 기다리는 일 외에 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준희는 터질 듯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아무리 해도 진정이 되지 않는 두근거림을 달래 보려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 얼음을 꺼내 큰 컵 가득 얼음물을 만들었다. 물을 마시려는 순간 휴대폰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혁이 좋아하는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준희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음악 이라며 벨소리로 지정해 준 멜로디에 준희는 소스라치게 놀라 컵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컵은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깨져 버렸다. '며칠 동안이나 불안하게 뛰어대던 심장이 깨어지듯……. '준희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폴더를 열었다.'“여……여보세요.”'떨림을 주체하지 못해 하얗게 변하도록 휴대폰을 움켜쥔 손이 애처로웠다.'“…….”'“여……여보세요. 오……오빠? 혁이 오빠?”'“…….”'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준희는 알 수 있었다. 전화를 한 사람이 혁이라는 걸.'“오……오빠? 나 준희야. 왜 아무 말도 안 해? 그동안 연락 안 했다고 내가 화낼까 봐 말 못하는 거야? 화 안 낼게. 제발 뭐라고 말 좀 해봐. 응? 오빠?”'준희가 애타게 부르며 말을 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침묵만이 흐를 뿐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고 준희는 제멋대로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힘들어 한 손을 자신의 가슴 위로 가져가 힘껏 누르고 있었지만 이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는 심장의 박동을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김준희.”'무거운 침묵을 깨고 드디어 낮고 깊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폭주하던 준희의 심장이 기어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준희는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멀쩡히 목소리를 전해 주는 혁에게 감사한 마음 한 편으로 그동안 애태웠던 시간들이 떠올라 서러움이 물밀듯 밀려들었다.'“오……오빠. 정말 오빠네. 정말 혁이 오빠 맞네.”'준희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한 달 만에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가슴이 떨려왔다. 혁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를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제대로 잠들 수도 없었고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준희는 눈물에 목이 메어왔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오빠? 그동안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지금 어디야? 어디에 있어? 내가 갈게. 준희가 갈게.”'“…….”'혁의 이어지는 침묵에 준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오피스텔로 와.”'한마디를 남기고 전화는 끊겼다. 준희는 허둥지둥 지갑만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정신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혁의 오피스텔 문 앞에 서서야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슬리퍼를 신은 채 왔다는 것을 알았다. '준희는 크게 심호흡을 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잠시 기다리던 준희는 비밀번호를 눌렀다. 자신의 생일로 설정해 놓은 비밀번호는 띠링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잠금을 풀어 주었고 준희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조용한 오피스텔 안을 살펴보던 준희는 살짝 열려진 침실 문을 밀었다. 그러자 커다란 침대위에 건장한 상체를 드러낸 채 허리 아래에 시트를 덮은 혁이 누워 있었다.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있는 모습에 준희는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방 안을 바라보았다. 곳곳에 자신의 향이 배어 있는 익숙한 곳이었다. 혁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준희는 그동안의 걱정과 화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정말 오빠구나. 이렇게 내 눈앞에 다시 와줘서 고마워. 영영 사라져 버린 줄 알고 너무 무서웠는데 이렇게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오빠.’'문 앞에 선 채 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준희는 자신을 미친 듯 탐하던 혁의 모습과 사랑을 나눈 뒤 꼭 품어 안아 주던 넓고 탄탄한 가슴이 떠올라 수줍게 볼을 물들였다. 좀 야윈 듯 보였지만 여전히 탄탄하고 넓은 가슴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오빠.”'조용히 혁을 부르며 천천히 다가가려는 순간 인기척이 들리며 욕실에서 방금 샤워를 한 듯 물기를 머금은 머리를 수건으로 두드리며 혁의 것이 분명한 셔츠 한 장만을 걸친 채 여자가 나왔다. 인형처럼 예쁜 이목구비에 늘씬한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진 여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준희는 머릿속이 하얗게 빈 듯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 놀란 준희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