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사무실 안, 쓸쓸한 배경 음악이 흐르며 어떤 남자의 구슬픈 음성이 흘렀다.'“어떻게 우리가 헤어져? 우리 사랑이 어떻게 변해? 난 그럴 수 없어.”'“이젠 어쩔 수가 없잖아요? 우린 안 되는 걸. 안 된다고들 하는 걸. 그러니 포기하는 게 맞아요.”'여자 또한 목이 많이도 멘 상태였다. '그렇게 두 남녀의 애달픈 실랑이가 계속되는 중으로 갑작스레 뜨끔 없는 울부짖음이 새었다. 또 다른 남자의 것으로 사랑을 일컫던 남자의 음성보다는 좀 더 선명한 목소리였다.'“그래, 사랑이 어떻게 변해. 사랑은 고귀하고 성스러운 거라서 절대 변하면 안 되는 거야. 흑흑흑, 아현아 마음을 고쳐먹어.”'코까지 팽! 풀어댔다. '바로 그때 바람을 가르고 퍽! 하는 둔탁한 소음이 퍼졌다. 그와 함께 그 전의 남자들과는 사뭇 다른 묵직한 저음이 흘러나왔다.'“이 보탬 안 되는 것들! 지금 그따위 사랑타령이나 하는 영화가 보고 싶냐? 누군 속이 뒤집혀 죽겠는데?”'속이 뒤집혀 있다며 괜한 승질도리를 하는 그의 이름은 독전이었다. 임독전. 풀이하자면 홀로 독(獨), 돈 전(錢), 이 세상의 모든 돈을 혼자서 독차지하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었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그를 독전이 아닌 독존으로 불렀다. 물론 면전 앞에선 절대 부를 수 없을 일이었다. 잘못했다간 쌍코피가 터지는 극악스러운 사태를 직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한마디로 그는 폼생폼사 유아독존,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지독히 유별난 인물이었다. 시건방짐의 지존으로 누군가 본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을 벌였을 시 그와 똑같이, 아니 기필코 두 배 정도의 보복을 일삼는 이였다. '좀 더 이해를 돕자면 누군가 자신보다 멋지게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무지 열 받는다는 이유로 애당초 손도 대지 않았고 누군가 자신보다 주량이 세면 그 또한 열 받는 일이므로 입도 대지 않겠다는 주의였다. 거기에 청소년기 남자아이들 사이에선 누구나 한 번쯤 배우는 당구 역시 같은 맥락으로 가차 없이 외면이었다. '그런 그가 현재 몹시, 무척, 굉장히 못마땅한 심정이었다. '사실 좀 전까지는 널따란 창문 앞에 서서 높은 빌딩 밖만을 고독히 응시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신중히 고심을 하던 참이었었다. '그럴 때 친구란 놈들이 멜로영화를 보며 스크린 속의 주인공을 따라 흐느꼈던 것이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열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소갈머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치밀었다. 안 그래도 심난해 죽겠는 판이건만 위로는 못해 줄망정 도리어 기름을 콸콸콸 쳐 부어대니 말이었다.'그렇기에 그는 눈치코치 없는 친구 놈들에게 더욱 우렁차게 쏴붙였다.'“노트북 꺼! 당장!”'“흐흑……독전아?”'두 친구들 중 영화의 대사를 따라하며 울부짖었던 상택이란 놈이 애달픈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이게, 그냥!”'퍽!'독전은 여지없이 좀 전보다 강한 펀치를 날렸다. 상택은 아! 하는 신음 소리를 뱉고 더할 나위 없이 울상을 지었다. '“넌 사랑을 너무 몰라. 흑! 내 마음도 몰라주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대뜸 문을 향해 뛰쳐나갔다. 완전 멜로영화의 슬픈 여주인공이 따로 없었다.'독전은 온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변색시켰다.'“넌 잡히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거기 안 서!”'“독전아?”'이번엔 가만히 자리를 보존하고 있던 또 다른 친구 놈이 입을 열었다. 가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친구는 끓어오르는 부아로 거친 숨을 나부끼는 독전에게 나직이 일렀다.'“참아라.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에라잇!”'퍽!'독전은 콧방귀도 뀌지 않으며 가성의 뒤통수를 내리 갈겼다.'“똑같은 놈이 뭐라는 거야, 지금? 너도 나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