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친네, 진짜 망령든 것 아니야?'짜증이 덕지덕지 묻은 경민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은정은 누가 듣기라도 할세라 얼른 송화기를 손바닥으로 막았다.'“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 어머니한테. 경솔하게 그러지 마.”'- 내가 지금 말 곱게 나가게 생겼냐고!'“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 아니야.”'- 아, 몰라!'경민이 팽하고 신경질을 부리더니, 만사가 다 귀찮아 죽겠다는 듯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결해.'“어머니가 내 말을 들으셔야 말이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되잖아. 건강도 안 좋은 양반이 여기가 어디라고…….'“하나뿐인 아들 졸업식인데, 당신이 직접 보고 싶으신 게지.”'- 졸업식이 별거냐?'경민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정은 잔뜩 골이 난 아이처럼 양쪽 볼 가득 바람을 집어넣고 있을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며,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어렵고 팍팍한 형편에 굴하지 않고 무사히 학업을 마친 경민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박사 학위잖아. 오빠 이번에 박사 됐다고 친구 분들한테 얼마나 자랑하시는데.”'- 그런다고 당장 비행기표 사서 내놓으라고 하냐? 진짜 노친네 망령이라니까.'“좋아서 그러시는 거잖아. 얼마나 좋으면 그러시겠어. 하긴, 나도 이렇게 좋은데.”'헤벌쭉 은정의 기분 좋은 웃음 때문이었을까. 경민이 짤막한 한숨을 한 자락 푹 내쉬더니 시종 비딱하기만 하던 말투를 조곤조곤 바꾸었다.'- 엄마 혼자 여기를 어떻게 와? 샌프란시스코가 이웃집도 아니고.'“내가 모시고 갈게.”'- 학교는 어쩌고?'“1주일 정도라면 휴가 낼 수 있을 것 같아.”'- 언제는 눈치 보인다면서?'“눈치야 지금도 보이지.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은정은 또 말끝에 해시시 미소를 품었다. 요즘 들어서 실없는 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웃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을 새삼 실감한다고나 할까. 지난 5년은 경민의 박사 학위를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나날이었다. 그동안의 눈물겨운 수고와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마당이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됐어. 됐다고. 너까지 나서서 설레발칠 것 없어. 엄마 하나로도 이미 충분하거든?'“왜? 솔직히 나도 미국 가고 싶어. 오빠 졸업 가운 입고 목에 박사 후드 걸친 모습 보고 싶단 말이야.”'- 진짜 됐거든? 참아 주셔. 엄마한테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뭘?”'- 엄마한테 얘기한다고.'“그러니까 뭘?”'- 엄마 여기 오지 못하게 얘기한다고. 같은 말을 몇 번씩 하게 만들고 있어.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고만.'경민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성깔을 부렸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발끈 화부터 내는 못된 버릇이 또 발동한 모양이었다. 은정은 재빨리 말소리를 부드럽게 가다듬어 돋워진 경민의 성질을 다독거렸다.'“미안. 얼른 자. 거기 벌써 12시 넘었지? 어머니는 내가 안 된다고 잘 말씀드려 볼게. 오빠도 어머니한테 따로 얘기하고.”'- 알았어.'툭툭한 한 마디 대꾸를 끝으로 경민이 전화를 끊을 태세였다. 공연히 그것이 아쉬운 은정은 서둘러서 말소리를 송화기 저편으로 실어 보냈다.'“푹 자. 또 전화할게.”'- 시차 잘 계산해서 전화해. 지난번처럼 꼭두새벽에 하기만 해 봐.'“거기 시간으로 아침 10시 이후면 괜찮지?”'뚜, 뚜, 뚜. '대답 대신 무심한 기계음만 하염없이 들려왔다. 휴대전화기 폴더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은정의 입에서 묵직한 날숨이 새어 나왔다. 이상하게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크게 좌우로 흔들어 애써 사위스러운 생각을 털어 냈다.''한창 통화 중인 경민의 목덜미에다 대고 연화가 입김을 후, 불었다. 순간 발가벗은 그의 등줄기를 따라 후끈한 열기가 두두두 지났다. 경민은 수화기를 뺨에 밀착시켜 신음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다음, 자유로운 왼손을 등 뒤쪽으로 돌렸다. 손가락을 휘휘 내저어 비너스의 둔덕을 뒤덮은 수풀 속을 거칠게 파헤쳤다. 가슬가슬한 덤불 사이 축축하게 젖은 동굴 안으로 검지와 중지가 쏘옥 빨려들어갔다. 경민이 손가락 끝을 세워 내벽 한쪽을 손톱으로 긁자 달짝지근한 교성이 연화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하아!” '연화는 저녁나절 만끽한 향락으로 힘없이 축 늘어진 경민의 남근을 손바닥 안에 힘껏 쥐었다가 천천히 풀어놓기를 반복했다. 조몰락조몰락 아무리 애무를 거듭해도 그 크기와 강도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못내 아쉬운 한숨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