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최근 모기업 회장의 차녀 L양이 납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보통 1주일 이내에 해결되는 어린이 유괴사건과 달리 한 달이 넘게 미궁에 빠져 있다. 협박 전화도 없고, 원한 관계에 의한 것이라 추적할 만한 단서도 없었다. L회장이 수차례에 걸쳐 방송과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하여 어떠한 요구에도 수용할 뜻이 있음을 밝혔으나 범인으로부터 연락은 없다. 전국 경찰에 비상령이 내려졌으며 2세에서 5세 사이의 유아에 대한 모든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사진을 배포해 L양을 찾고 있지만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제보는 없는 상태이다.’ ''신문을 접어 내리는 남자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신문을 구석에 밀어 넣고 남자는 TV를 켰다.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는 L양 납치사건…….''앵커가 한 문장의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TV는 꺼졌다. 남자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말없이 방에서 담배만 피우고 있는 남자에게 사내아이처럼 짧게 머리카락이 잘린, 그러나 뽀얀 피부와 맑은 눈동자가 여자아이임을 말해주는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와 무릎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빠, 까까!]''남자는 벌써 그를 아빠라 부르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답이 없자 아이는 다시 남자를 조르기 시작했다. ''[아빠, 까까!]''남자는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아가야 미안하다. 대신, 잘 키울게. 많이 예뻐하고, 네 부모만큼은 아니지만 사랑도 많이 주고. 네가 결코 불행하지 않게 키워줄게. 아가야 미안하다.]''죄인처럼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남자를 한 여자가 두려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보,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사람 많은 곳에 버리고 와요.]''[미쳤어? 당장에 잡힐 거야.]''[우리, 충동에 의해 저지른 것일 뿐 돈을 요구하거나 목숨을 위협한 건 아니잖아요!]''[그 사람들이 믿어 줄 것 같아? 이미 엎질러진 일이야. 감옥가기 싫으면 입 다물고 있어. 그리고…… 난 이 아이 이젠 못 보내.]''''''1장''''''[잘 해. 또 실수하지 말고.]''시연의 어설픈 솜씨가 걱정이 되는지 현수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니들이나 잘 해.]''문제없다는 듯 큰소리 쳤지만, 긴장 때문인지 시연의 손에서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봄이라 호텔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무척이나 화사했다. 시연은 현수와 함께, 며칠 전부터 관찰해 온 남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시연과 현수의 옆으로 은정이 태연한 척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긴장은 감추어지지 않았다. ''호텔직원들의 눈을 피해 남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조금 전부터는 직원한명이 계속해서 의심스런 눈초리까지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왜 안 나타나는 거야?’''내내 시연 일행을 의심쩍게 주시하던 호텔직원이 마침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시연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호텔직원과 오늘따라 늦도록 나타나지 않은 남자를 향해 구시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시연의 눈에 남자가 보였다.''‘오려면 일찍 올 것이지 사람 애타게 만들고 이제야 나타나냐, 자식!’''시연은 민첩하게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현수도 상황을 눈치 챘는지 자연스럽게 은정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남자의 뒤로 다가섰다.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비슷한 연배의 일행과 늘 함께 다녔지만, 오늘은 혼자였다. 좋은 기회였다. 최고급호텔에서 며칠씩 투숙하는 사람이라면 지갑도 두툼할 거라는 기대감이 시연으로 하여금 숨 막히는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밀폐된 작은 공간 속에서 세 사람의 오감은 오직 그들이 타깃으로 정한 남자에게만 쏠렸다. 오직 남자만을 주시하던 시연의 눈에 남자가 딴 생각에 빠져드는 순간이 포착이 되었다. 시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현수에게 눈짓을 보내 작업에 들어갈 것임을 알렸다. 유리처럼 반짝이는 엘리베이터 벽면에 현수와 은정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때를 맞춰 시연은 실수인 것처럼 남자의 어깨를 힘을 주어 슬쩍 밀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는데 언짢은 얼굴로 흘끔 쳐다보는 남자를 보는 순간 시연의 심장은 콩알처럼 오그라들고 말았다. 불안으로 가슴이 조여들며 사방이 온통 시연의 심장 뛰는 소리로 가득 메워져 버리는 것 같았다. 이쯤에서 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넘겨야 하는데 입이 얼었는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아 시연은 미칠 것만 같았다. ''‘의심 받을 거야. 이러다 잡히면 어떡하지?’''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시연의 얼굴이 화끈 달아 올라버렸다. ''[아, 저…….]''의외로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그제야 긴장이 이완이 되면서 얼었던 시연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괜찮아요.]''‘무척이나 관대하시군. 하지만 그 괜찮음이 얼마나 갈까?’ ''돌아서는 남자의 등을 향해 시연은 몰래 그리고 짧게 여러 번 안도의 숨을 나누어 쉬었다. 마음 같아선 모처럼 성공한 일에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건 잠시 후로 미뤄도 늦지는 않았다. 남자가 눌러 놓은 43층이 너무 멀었다. ''시연은 남자의 등 뒤에서 현수 일행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몰래 승리의 V를 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