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홍옥을 손에 쥐고 매만지던 여자는 연화각의 입구를 응시했다. 리가문의 영지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동쪽 구석에 자리한 그곳은 은은한 연꽃 향이 낮은 돌담을 넘어 퍼지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수장이 높게 담을 둘러쌓아 철저히 출입을 금하는 바람에, 연꽃 향은 담 너머로 그 향을 전하지 못했다. 연화각 출입을 금하는 이유를 어떤 이는 사람을 홀리는 귀신이 살기 때문이라 하고, 어떤 이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살기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여자가 알고 있는 것은 얼마 전부터 그곳에 누군가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로 인해 허가된 이들이 허가된 시간에 출입하는 것 외에는 철저히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것 정도였다.'「네이, 앞으로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어째서냐고 여자는 아버지께 물었다. 어째서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는 연화각에 들어갈 수 없는지, 어째서 어머니께서 숨을 거두신 그곳을 딸인 자신조차 들어갈 수 없는지를.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된다는 말 뿐이었다. '17년을 살아오면서 그녀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비록 연화각이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장소라고 해도, 아버지가 출입을 금한다면 따를 것이다. 일 년 중 단 하루인 오늘만을 제외하고.'오늘은 그녀가 태어난 날이다. 또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날이기도 했다. '끼익. 낡은 대문을 열고 여자는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자박자박 앞으로 걸어가자, 나무로 정교하게 이어진 다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리 아래로는 인공 연못이 있었고, 연못에는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했다는 연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녀는 연꽃 내음이 가득한 다리 위를 걸었다. 그러다 잠시 걸음을 멈춰 서서 다리 너머를 응시했다. '보름달이 뜬 어두운 하늘에 총총히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로 기와공들이 정성들여 기와를 이은 지붕이 유려한 곡선을 뽐내며 하늘을 받들고 있었다. 여전히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한동안 연화각을 멍하니 바라보던 여자는 다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때 피부를 스쳐 가던 따스한 공기가 변했다. 미세한 변화였지만, 오랜 시간 전쟁터에서 단련된 감각은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검을 빼어 든 그녀는 어느새 다리 위로 발을 내딛는 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툭, 데구르르……. '검을 드느라 손에서 놓친 홍옥이 다리 위로 떨어져 굴러갔다. 동글동글한 홍옥은 낯선 자의 발치 아래에서야 멈췄다. 천천히 허리를 굽혀 발 앞에 떨어진 것을 주운 사내는 밤에도 붉은 빛을 잃지 않는 홍옥에서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루비는 온나라 황가의 보물이라 알고 있는데. 하기야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말입니다.”'루비? 설마 홍옥을 말하는 건가? '사내의 입에서 나온 루비라는 말에 그녀는 그를 찬찬히 응시했다. 연꽃 향을 담은 바람이 불어와 사내가 입은 자색 비단 옷자락이 날렸고, 허리까지 늘어뜨린 은회색 머리카락은 시린 밤의 기운을 담아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런데 혹시 듣지 못했는지요? 허락 없이 이곳에 발을 들여 놓는 자는 그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설사 그 자가 온나라의 황제라 해도 말입니다.”'그의 눈동자가 밤의 푸른빛을 담아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받으며 여자는 검을 겨누었다. 아버지를 따라 크고 작은 전쟁이 빈번한 국경을 제 집만큼이나 드나들었던 그녀는 그에게서 풍기는 짙은 혈향을 감지하고 있었다. 사내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음에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 자였다. 방심하는 사이에 무뎌졌던 감각이 올올히 살아났다. 그녀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아버지께서는 연화각에 머무는 존재에 대해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셨을까. 대체 이 자가 누구기에?'그녀가 든 검 끝에 머물던 그의 시선이 날을 타고 느리게 움직여 검의 자루에서 멈췄다. '“무엇 때문에 이곳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까? 리 수장이 보냈습니까?”'흠칫. 사내의 말에 그녀가 든 검날이 흔들렸다. 그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깨달았다. 이길 수가 없는 상대라는 것을.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남자에게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다리의 난간을 밟으며 뛰어 올랐다. 회익! 허공에 검은 무복이 거칠게 휘날렸다. 검을 내지르려는 순간, 그가 돌아서 움직였다. 그의 손이 재빠르게 검을 든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었다. 저릿저릿한 악력에 여자는 손에서 검을 놓쳤다. 곧 손목을 쥔 악력이 사라지자마자, 그의 손이 얼굴로 날아들었다.'쫘악! '고개가 모로 꺾였다. 중심을 잃은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입안이 터져 비릿한 피 냄새를 느끼며 그녀는 팔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때 차가운 검이 목에 닿았다. 원초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잠시 그녀의 혀를 굳게 했다. 그에게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로 이곳에 발을 들여 놓았는지 물었습니다. 제대로 대답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자객처럼 담장을 넘었다면 그 자리에서 제가 당신의 목을 쳤을 테니.”'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여자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만큼 사내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누군가 연화각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기척을 숨기지도 않고 대문을 지나 다리로 발을 내딛는 이는 리가문의 수장 파헨 리였다. 그는 다리 위의 딸과 사내의 모습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