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다.”'누군가 소리쳤다. 머나먼 상념에 빠져 있던 그녀는 그제야 살짝 고개를 들었다. 재빠른 아이들이 벌써 우르르 창가에 붙어 복도를 지나가는 은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도 엉거주춤 일어서 창가 너머 복도를 주시했다. 두근거리는 기대감이 치솟아 올랐다. 일부러 며칠째 본채에 건너가지 않고 그를 피해 왔었다. 학교를 결석하는 은호였으니 그사이 둘은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다소 마른 은호가 의연하게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바로 옆 창가에 실려 온 바람이 살랑거리자 어진의 가슴도 간질거렸다. 그의 얼굴을 눈에 담은 순간 또다시 마음이 널뛰듯 이러 저리 흔들렸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은호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자리를 정확하게 찾아내었다. 그의 곧은 눈빛을 받자 그녀는 그 자리에 움직일 수도 눈동자를 돌려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며칠간 못 본 걸 보충이라도 하듯 그의 얼굴 하나하나 꿰뚫듯 바라보았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으로 충만해 터져 버릴 거였는데 어떻게 냉정하게 대할 수 있는 건지. 스스로의 자제력이 무척 대단하게 느껴졌다.'“아프다더니 얼굴이 반쪽이 다 되었네.”'복도에 선 은호가 발걸음을 옮기자 그녀는 아릿한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상실감이 휩쓸었다. 곧 사라져 버릴 것 같던 은호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어진의 반으로 불쑥 들어왔다. 놀란 건 반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자리를 지키던 그녀도 너무 놀라 얼어 버렸다. 천천히 들어온 은호의 눈동자는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교실은 숨죽인 아이들의 시선만이 따라올 뿐이었다. 그녀 앞에 선 은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꼭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날 일……. 꿈이 아닌지 꼭 알아야겠어.”'당황하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그의 한마디에 갑자기 촉촉한 입술의 맛이 생각이 나 버렸다. 부드럽고 촉촉해서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던 그 맛 말이다. 그냥 꿈이라 생각할 것이지 왜 그런 의문을 가져서 지금 이 자리에서 꼭 확인하려 하는지. 아이들의 호기심이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교실 한가운데가 푹 꺼져 버려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