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빛깔과 녹색 빛깔이 절묘하게 섞인 비단 천을 선명한 붉은 술 장식으로 마감하여 신방 문에 길게 드리울 참으로, 유모는 잰걸음으로 유자를 안고 내당으로 걸어오고 있었다.'“하이고, 망측하게. 후후.”'막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다정하게 선 두 사람의 모습이 유모의 걸음을 멈추어 서게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을 어찌 투명한 구슬처럼 그리 환히 들여다볼 수 있을까 만은, 지금 바람 한 줌 파고들 미극도 주지 않고 서로를 꼭 끌어안은 두 사람의 깊은 연정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깊고 아름다웠다. '“오랫동안 그리도 외로우셨는데……참으로 다행입니다.”'황녀였던 어머니 영화에게서 자애로운 미소, 따스한 눈길 한 번 받은 일이 없으셨던 이각 도련님. 어느 누가 감히 다가올 수도 또한 도련님께서 먼저 다가가시지도 않겠다는 슬픈 의지를 담아, 마냥 차갑고 시리기만 하였던 쓸쓸했던 눈동자. 그 짙은 눈동자에 이제는 고운 온기만이 가득하기를, 유모는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랐다.'“후후, 씩씩하고 밝은 우리 해율 아씨 앞으로는 행복하기만 하십시오.”'인자한 미소로 이각을 바라보던 유모의 시선이 어느새 자그마한 여인에게로 향하였다. 숨겨야 했던 일이 많았던 만큼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을 삶에도 늘 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해율, 그녀가 있어 곧게 자란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이 집안에는 춥고 적막한 겨울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그쪽에다가 선홍색 꽃등을 걸어 주시오.”'튼튼하고 무거운 책상과 의자들을 들어내고, 서책으로 가득 하였던 책장마저 옮기고 나니, 널따란 서실은 금일 혼례식을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미한 꽃들이 만발하는 봄이라면, 아니 하다못해 햇살 밝은 낮에 식을 치를 수 있었다면 부러 서실에서 혼례를 치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소?”'근석 아범이 왼편으로 기울어진 꽃등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유모는 잠시, 누구보다 난연한 햇살 자락이 어울리는 해율을 떠올리며 속상한 마음을 애써 추슬렀다. 단지 녹안을 가지고 태어난 주가의 핏줄일 뿐, 얼마나 따스하고 고운 분이신가. 그런 분께서 요상한 예언 탓에 더는 마음 놓고 햇빛 속을 거닐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그만 하면 되었소. 두 시진 후면 손님들이 드실 것이니, 그만 가셔서 몸도 닦고 옷도 갈아 입으시고.”'해야 할 일이 많으니 차오르는 상념들에 휘둘려서는 아니 될 터, 유모는 서둘러 고개를 힘껏 주억거리며 다시금 혼례식이 거행될 서실 꾸미기에 몰두했다.'“허허, 아니오. 어차피 외당에 가도 고족상을 드러내고 나면 할 일도 없으니 좀 더 도와드리리다. 마음이 좋아서 그런가, 몸도 노곤치가 않소.”'경안의 깊은 산중으로 각궁을 만드는 데 쓰일 무소의 뿔을 구하러 간 무호는 끝내 만나지 못하였으나, 소식을 전하러 모안의 외곽까지 다녀온 근석 아범도 유모만큼이나 피로가 쌓였을 것이 분명하였다. 헌데도 주름진 그의 얼굴에서는 넉넉한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허기사, 나도 우리 도련님께서 드디어 저리도 고운 인연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게 되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자지 못하여도 고단치 않다오. 게다가 이리 머리가 맑고 기운이 나니 해율 아씨의 꽃단장을 수백 번도 더 고쳐 드릴 수 있겠소. 호호호호.”'영롱하게 빛나는 오색찬란한 유리구슬은 서실에 환하게 등불을 켜면 불빛에 아른아른 곱게도 반짝일 터. 유모는 근석 아범에게 외당의 시비들과 길게 꿰어 놓은 구슬 장식을 펼쳐 보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하의 냉연한 사내도 긴장이 되는 것인가?”'은은한 광택이 도는 청금단에 금실로 수를 놓은 자줏빛 비단으로 소매와 옷깃을 장식한 청유국 황족의 예복을 입은, 이각의 넓은 어깨를 누군가가 가볍게 두드렸다. '“도현.”'시선을 드니 아직 햇살이 조금 남은 하오. 혼례를 앞둔 친우를 찾아온 도현이 희미한 그늘을 감춘 눈동자로 빙긋빙긋 웃으며 서 있었다. '“후후후.”'말없이 보고 있던 서책을 내려두고 친우를 맞이하는 이각의 수려한 얼굴은, 비스듬히 넘어가는 햇살에 젖어 한층 더 기품이 넘쳐흘렀다.'“앉게.”'도현에게 담남색 비단의자를 권한 이각은, 다반에 놓여 있던 작은 회색 찻잔에 작설차를 부어 건넸다.'“미리 언질이라도 하지 않고……그리 급하던가?”'아직 혼례식까지는 한 시진도 넘게 남아 있었다. 허나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더디 가는 시간을 초조함과 약간의 긴장으로 보내고 있는 이각을 보니, 도현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슬쩍 농을 던졌다.'소리 내어 답은 하지 않았으나, 이각의 날카로운 눈매 안 순흑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부푼 설렘도 함께 고여 있었다. '“후후, 말하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로 하루빨리 반려를 맞이하고 싶었던 모양일세.”'한층 더 밝은 목소리를 내는 도현. 비록 생각지 못하게 거짓으로 꾸며낸 정인의 존재에 마음이 흔들리고 어지러웠던 날들도 있었으나, 더는 감히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겠지.'“전일 오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