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16년, 정월 닷샛날.'종3품 이상의 고관들이 편전에 모두 모여 임기가 다한 고을의 수령을 새로 임명하기 위해 천거를 시작했다. 편전에 오르기 전 이미 모두 입을 맞추고 인사를 한 터라 막힘없이 천거가 이어졌다. 헌데 충북 단양 차례가 되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침묵하니 임금께서 의아하사 넌지시 묻는구나.'“단양의 팔경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이냐?”'단양팔경으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너도나도 부임되고 싶은 곳인데 신하들이 하나같이 천거하기를 꺼려하니 이상하였다. 임금의 하문에 영의정이 나섰다.'“단양의 수령이 부임만 하면 일주일을 못 넘기고 이승을 달리하는지라… 누구를 천거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그렇잖아도 이조전랑이 단양 수령의 새로운 후보자를 올린 것이 세 번이었다. 왕은 오랫동안 침묵하며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하문하였다.'“최근에 상을 치른 자가 누구인가?”'얼마 전 좌의정이 부친상을 당했고, 그 바로 전엔 홍문관이 아이를 잃었지만 두 사람 모두 곤혹스러운 얼굴로 침묵할 뿐이었다. 헌데 이조전랑이 두 사람을 젖히고 다른 이를 답하였다.'“의주에 유배된 이원이 그제 모친상을 당하였습니다.”'“흠….”'임금은 뜻하지 않은 거론에 다시 침묵하였다. 단양으로 임명되면 자꾸만 세상을 달리한다 하니, 최근에 상을 당한 이를 보내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하문했던 차였다. 설마 하니 저승에서 상을 당한 이까지 데려갈까 싶어 물은 것인데 유배 보낸 이원을 말하니 심기가 불편했다. '작년 원자 책봉을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이 갈라져 찬반을 논하는데 사간원 정언(正言)이었던 이원이 후궁 장씨의 소생을 원자 책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끈질기게 상소를 올렸던 것이다. 서인도 아니고 남인인 그가 반대를 하는 것이 의아하였지만, 정언으로서 충실하고자 하는구나 싶어 마땅치 않아도 그냥 두려 했는데 사화가 모두 정리된 후에도 고집스레 상소를 올리며 심기를 불편하게 하니 어쩔 수 없이 유배를 보내 버린 참이었다. 헌데 모친상이라. 유배 중이라 임종도 지키지 못했음이라. '장고 끝에 임금은 결정을 내렸다. 뜻을 거스르며 대서는 그의 태도 오만방자하나, 유배 중에 모친상을 당하였다니 관직에 오른 경험 미천하나 단양으로 보내기로 말이다. 오만방자하고 무서운 것 없는 그 혈기 때문이라도 단양에 가서 쉬이 죽지는 않으리라.'“이원을 단양으로 보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