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안을 계집이 필요해. 그는 탁자에서 궐련이 끼워져 있는 연취(煙嘴)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얀 연기가 길게 흐른다. 청윤의 눈길이 힐긋 다혜에게가 닿는다. 조잡스러운 목필 따위로 틀어 올린 머리가 가는 목덜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묻어날 듯 희고 부드러워 보이는 곡선이 제법 단아했다. 눈이 먼저 가고 그 다음엔 손이 따라갔다. 때론 그 반대가 되어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러다 손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부탁하듯 말했다. ''“그렇게 한숨 좀 쉬지 말아요. 듣는 사람은 엄청나게 마음이 불편해진다구요.”'“피곤한데, 그대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잖아.”''그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다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내가요? 내가 왜요? 시끄럽게 한 것도 아닌데.”'“불.”''다혜는 방 곳곳에 켜져 있는 등촉을 둘러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불. 미, 미안해요. 하나만 남기고 다 끄……”''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의 불이 차례로 꺼지기 시작했다. 다혜는 깜짝 놀라 탁자 위의 등촉만이라도 지키려 했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하나는 남겨달라고 했잖아요!”''갑자기 어두워진 시야에 제 손 발도 보이지가 않았다. 껌껌한데 들리는 건 그의 심술궂은 목소리뿐이었다. ''“하나도 거슬려.”''하여튼 더럽게 예민해가지고! ''“이렇게 다 꺼버리면 난 어쩌라는 거예요! 잠은요? 잠은 어디서 자요, 난?”''설마 탁자에 엎드려 자라는 건 아니겠지? 바닥에서 자려고 해도 이불은 줘야 할 것 아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대답이 약간 늦게 나왔다. ''“어제 잔 데서.”'“어제?”''생각 없이 그의 말을 따라하던 다혜의 얼굴이 순간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제 그녀는 그의 배 위에서 잤었다. ''“어, 어제는! 후우.”''당황해 따지려던 다혜는 심호흡을 하며 그의 농간에 넘어가지 말자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난 다 나았어요.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싫어요. 물론 당신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니 둘 다 싫은데, 비상시국도 아닌 마당에 또 그래야 할 필요가 없잖아요.”''다혜는 컴컴한 어둠을 더듬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는 데도 앞이 잘 가려지지 않을 만큼 컴컴했다. 청윤은 계속 말이 없었고 다혜는 차츰 불안해져갔다. ''“청윤? 설마 자는 건 아니죠?”''뒤척이는 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다. ''“청윤?”''다혜는 또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뜬장님처럼 앞을 더듬어 가는데, 침상의 나무 기둥이 발밑에 탁 부딪혔다. 저게 큰 게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컴컴한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촉감으로만 의지에서 앞을 짚어나가니 더럭 겁이 났다. 뭐가 나올 것 같이 무섭기도 했고.''“처, 청윤!”''손이 그에게 닿은 것 같았……''“하아, 왜 남의 허벅지는 더듬고 난리실까.”''그의 낮은 목소리가 뱃속을 휘돌려 놓았고 다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떼어냈다. ''“청윤!”''다혜는 화를 삼키며 씩씩거렸다.''“왜.”''그는 또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내 이름 부르기 싫다던 사람치고는 꽤나 열심히 불러. 어쨌든 난 자야겠으니 더 그리고 싶으면 가서 그리던지.”''헐, 뒤끝. 자기는 나한테 더한 소리도 했으면서 겨우 고거 한마디 가지고 이렇게 되갚아 준다 이거지? 진짜 성격이 왜 이 모양이야? 어휴 성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