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 씨, 오늘 녹음 들어간다고 연락받았지?”'“네. 근데 준이가 곡 수정해야 한다고 하던데…….”'사무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트로피와 상패들. 모두 준과 윤서의 것들이었다. 벌써 ‘작사가 이윤서’로 살아간 지 6년째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준비하던 준이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계속해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공개 오디션이었다. 곡을 만들어서 데모 테이프를 보내는 것이었는데, 준은 자신이 만든 곡에 윤서가 쓴 가사를 붙여서 자신이 노래를 부른 후 녹음을 해서 보냈었다. 연락처 하나만을 적어 놓은 채.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그 오디션을 시작으로 프로의 세계에 입성했다, 작곡가 하준과 작사가 이윤서로.'탁월한 음악 감각을 자랑하는 준과 윤서였기에, 그들이 내놓는 곡은 다 히트를 쳤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사무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트로피와 상패들이었다. 그래서 하준과 이윤서가 함께 콤비로 뭉치면 못 뜨는 노래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기 때문에 신인들이나 재기에 성공하려는 가수들은 항상 준과 윤서. 특히 준에게 찾아와서 사정했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데뷔 준비 중이라는 신인을 위해서 하준 & 이윤서 콤비가 다시 한 번 뭉쳐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기획사가 GN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기획사였기 때문에 준도 거절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마음에 안 드는 작곡 제의는 다 거절하는 준이었는데 억지로 맡게 된 걸 보니 역시 기획사라는 것이 크고 봐야 하는 것 같았다.'“하준, 너 오늘 녹음 들어갈 수 있기는 해?”'“응, 잠시만 기다려 봐.”'벌써 한 시간째이다. 신인 가수들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준은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계속 수정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수정이 끝난 것인지 준은 신인 가수들을 녹음실 안으로 불러들였다.''“그 부분, 그렇게 아니라고 몇 번 말했어!”'같은 부분을 두 시간째 헤매고 있는 신인이었다. 준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잘 와 닿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끽 해봤자 나이가 열여덟 살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돌 가수로 데뷔를 하는 것과 또 얼굴을 보니 그러했다. 그러면서 요새는 실력으로 먹어줘야 한다면서 발라드 곡을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더 애먹는 중이었다.'“한 실장님, 애들 트레이닝 시키기는 한 겁니까?”'“준 씨가 좀 이해해 줘. 얘들이 첫 녹음인데 하준 씨랑 이윤서 씨 콤비 만나서 더 긴장한 모양이야.”'“지금 이 정도 곡도 소화 못하면서 어떻게 앨범을 낸다는 거죠? 애들 더 연습시켜서 녹음 가능한 실력이 되면 다시 오세요. 곡은 다른 애들 안 줄 테니까.”'준이 세게 나오자 한 실장은 물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세 명의 멤버도 굳은 것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한 성깔 하는 하준이라고 이미 이 바닥에서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아이들은 제대로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항상 한 실장은 윤서에게 도움을 청했다. 준에게 무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윤서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한 것 같았다.'이번에도 역시 윤서는 차마 그 눈초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한 명이 저리 까칠하니 한 명이라도 참는 수밖에…….'“하준, 얘기 좀 하자.”'“한 실장님, 애들 데리고 가세요. 윤서야, 좀 이따가 얘기하자.”'“하준, 지금 얘기해. 급한 거 없잖아.”'그제야 준은 윤서에게 시선을 돌리고 무슨 얘기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윤서는 앉아 있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밖에 나가서 얘기하자는 듯이 문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하지만 녹음할 시에는 절대로 녹음실에서 일어나지조차 않는 하준이었기에, 윤서는 그냥 말을 해야만 했다.'“뭔데, 말해 봐.”'“얘네 신인이야. 녹음 한 번 해본 적 없는 애들이라고. 그렇게 까칠하게 할 필요 없잖아. 지금 연습시켜서 하면 되는 거구. 내가 듣기로는 좋아지고 있어, 비록 두 시간 걸리긴 했어도.”'“그래서.”'“얘네 트레이닝이 안 된 게 아니라, 긴장한 거야.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래. 하준, 네 눈엔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난 얘네가 이렇게 어린애들인 줄 몰랐어. 아무래도 가사 다시 써야 할 것 같아.”'그 말에 녹음하러 온 아이들과 한 실장님은 물론, 준과 엔지니어 기사님까지 꽤나 놀란 눈초리였다. 요새 윤서의 기분이 그대로 들어간 가사였기 때문에 3집 정도 준비하는 가수이거나 가슴이 절절하게 아리는 사랑과 이별을 겪어 본 사람들이 부르기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봐도…….'“무슨 소리야?”'“윤서 씨, 곡 아주 좋아. 우리 애들도 마음에 쏙 들어 하고.”'“하준, 나 나가서 얘기하고 싶어. 내 사생활까지 여기서 다 얘기하긴 좀 그렇다.”'윤서의 말에 준은 이내 아무 말 않고 순순히 따라나서 주었다. 요새 윤서의 기분이 꽤나 날카롭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곡이 윤서의 기분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을 정도였다. 우울함, 슬픔, 아리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