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아무 상관없는 고희란 씨가 왜 절 돕겠다는 겁니까?”'어느새 현민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딱딱한 얼굴로 조용히 따지는 그의 모습에 희란은 어쩐지 마음 한 쪽에서 울컥 하는 기분이 들어 울고 싶어졌다. 희란의 마음을 몰라줘서 야속하다기 보다는 마음을 닫아버린 그의 모습이 아파서.'희란은 잠시 현민을 바라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요. 자꾸 당신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에요.”'굳어있던 현민의 얼굴이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차갑게 말했다.'“이제 와서 내 일에 상관하겠다니, 이해할 수 없군요. 고희란 씨는 날 싫어하지 않았던가요?”'담담하게 선을 긋고 현민을 거부했던 그녀였다. 그랬던 그녀가 갑자기 찾아와 현민에게 다가오겠다고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신경 쓰여서 일에 매달렸던 며칠 간, 현민은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겨우 마음을 잡았는데, 어제 다시 희란을 만나고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녀는 현민이 아주 오래 전부터 은을 헌신적으로 지켜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은에게 버림 받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현민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으며, 쓴 웃음을 삼켰다.'‘동정인가?’'희란이라면,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저 착한 여자라면 충분히 현민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돕고 싶어할만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현민은 가슴 한 쪽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현민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쓸데없는 동정은 사양하겠습니다. 고희란 씨 도움은 필요 없으니, 더 이상 제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군요.”'현민이 단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돌아섰다. 완강한 거부 의사를 지닌 그의 차가운 뒷모습을 희란은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저으며 참고 있던 한숨을 뱉어냈다.'“동정, 아니에요.”'책상 쪽으로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처음에는 동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동정이었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이 동정 받을 정도로 약한 남자가 아니라는 거 아니까요.”'차분하게 말한 희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그리고……, 나 강현민 씨 싫어한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그 말에 현민은 다시 천천히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희란은 미소를 지으며, 현민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이사실을 나왔다. 그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그런 희란의 진심에 어떻게 답할지는 전적으로 현민에게 달린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