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희와 그 운명적인 밤을 보내기 전까지, 서른두 해를 살아온 박승열은 동정(童貞)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그렇게나 나이를 먹은 남자가 동정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말이 있기 마련이지만, 승열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그가 아주 보수적인 남자인 데다가 시간도 없었고 기본적으로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열여덟 살 때, 부모님이 뺑소니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뒤 결국 범인을 못 잡고 종결된 것을 보면서 승열은 경찰의 윗선인 검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이 여의치 않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제외하고 승열의 가족이자 형제는 총 일곱 명이었는데, 당시 두 살 위인 승안 형이 집을 나간 상황이었기에 가장 나이가 많은 그가 다섯 명의 어린 동생들을 부양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충격 속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에 의무를 떠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쌀이 없어서 막내 동생이자 집안의 유일한 여자인 열 살짜리 승리가 배를 곪는 지경이 되자, 그때야 승열은 자신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막 자퇴서를 내려고 했을 때, 집을 나갔던 승안이 돌아왔다.'당시 스무 살이었던 승안은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 하루하루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렸다. 승열은 그런 형을 돕고 싶어서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려고 했으나 승안은 결사적으로 동생을 말렸고, 도와주고 싶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달라고 당부했다.'교사들까지도 전국 십위 권 안인 승열을 말리자, 승열은 더 열심히 공부했고 국내 최고의 대학에 수석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여러 경로를 통해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도 지원받았기에 마음만 먹으면 미팅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대학 공부는 물론 사법고시 공부도 미리 철저하게 해놔야 했으며 그나마 남는 시간에는 돈이 없어 과자 하나 제대로 사먹지 못하는 동생들을 위해 고액 과외를 뛰어야 했기 때문이었다.'졸업할 때인 스물세 살 때, 네 살 아래의 동생 넷째 승연이 메이저리그로 가면서 십억이 넘는 상당한 계약금을 받은 것을 계기로 가족들 전체가 빈곤에서 벗어나긴 했다. 또한 그 뒤로 승안 형의 사업이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기에 풍족해졌다. 하지만 돈의 여유는 승열로 하여금 형제들에게 빚을 졌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했고 그래서 다른 것에 한눈을 파는 대신 이를 악물고 공부에만 파고들게 했다.'그리하여 스물네 살, 졸업한 다음 해에 승열은 목표한대로 사법고시에 동차(同次)로 합격했다. 한때 그는 변호사가 되어 돈을 벌 생각을 했었지만, 승열이 원래 검사를 지망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부모님의 뺑소니 사고에 대해 분노하는 다른 형제들은 승열이 검사가 되기를 바랐다. 형제들의 설득에 승열은 결국 검사를 택하게 되었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도 피 튀기는 경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자신을 지지해주는 형제들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뛰어난 성적으로 군법무관에 합격했다.'사시에 합격한 뒤 마담뚜를 비롯해서 여기저기에서 선이 물밀 듯이 들어오긴 했다. 주로 집에서 먹고 노는 부잣집 딸들이 대상이었는데, 승열은 고생을 모르고 자란 그런 여자들은 싫었다. 그리고 사실, 기본적으로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승안 형이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승열은 승안 형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다. 비록 승안은 입양 됐다는 사실을 알고 십대 때 방황하기는 했으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정신을 차리고 피가 섞이지 않은 동생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어쩌면 영혼까지도 다 바쳤다. 그런 형이 결혼은커녕 여자 한 명 만나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자신이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인생을 즐길 수 있겠는가?'그리하여 스물여덟 살에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뒤 삼 년 동안 군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전역 후 검사로 임관된 뒤에도 승열은 밀물처럼 들어오는 선 자리는 족족 거절했다. 물론 동정을 떼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사실 아주 강하게 들었으나, 방법이 없었다.'대한민국에서 가장 쉽게 성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매춘이었다. 그러나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매춘 말고는 사귀는 여자와 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결혼 생각이 없는데 사귈 수는 없는 법이었다. 클럽이나 바에 가서 원 나이트를 하는 방법도 있긴 했다. 그러나 애초에 클럽이나 바같이 세속적인 장소는 절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곳이 아니라 검찰청 같은 근엄한 장소에서도 그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여자들이 있긴 했다.'190cm에 달하는 큰 키에 곰이 연상될 만큼 거대한 덩치가 상당히 위압적이었으나, 승열은 자신이 괜찮게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옷을 엄청 못 입는 터라 한때는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렸지만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동생들이 코디를 해준 다음부터는 그럴듯하게 보였고, 그에게 눈길을 주는 여자들도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