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폰이 필요해.”'지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우의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이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그거 당신이 할래?”'지원이 신우의 앞에 다가와 섰다. 신우는 숨을 훅 들이켰다. 그녀의 달콤한 향기가 폐부 곳곳에 스몄다. 은밀한 욕망이 아득한 곳으로부터 다시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원의 입가에 사랑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그러나 신우는 지원의 그러한 미소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미소 짓는 지원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풀었다. 한지원은 천 회장의 아내였다. 류신우는 천 회장을 모시던 남자였다. 그녀 역시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 스폰서라니. 신우는 냉정한 눈빛을 띤 채 지원을 쳐다봤다.'“겨우 그 말씀하러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뭐라구.”'“설마 아니 제가. 한물 간 여배우 스폰서나 돼 줄 한가한 놈으로 보였던 겁니까?”'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서리가 내렸다. 여유를 부리는 태도였다. 신우는 일부러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지포라이터가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담배에 불을 붙였다.'지원은 빨간 불빛이 새어 나오다 조금씩 타들어가는 담배를 바라봤다. 타들어가는 건 담배뿐이 아니었다. 지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지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물러나면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거절하겠습니다. 한지원 씨.”'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내 이로 꽉 깨문 탓에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지원은 망설임 없이 대답한 신우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신우는 담배를 한 번 더 깊게 빨아들인 후 내뱉었다. 쉽게 무너질 여자가 아니었다. 지원은 신우의 예상대로 재빨리 쓰러지는 자신의 몸을 추슬렀다. 그녀는 오히려 더 당당히 턱을 치켜들고 있었다.'“그래? 잘 알았어.”'지원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미소를 짓더니 홱 돌아섰다. 신우는 돌아선 그녀의 등을 쳐다봤다. 내세울 건 자존심밖에 남지 않은 한지원을 짓밟고 나니 묘한 승리감이 찾아왔다.'“한지원 씨.”'그의 목소리에 지원의 걸음이 멈췄다.'“돌아가기 불편하시다면, 기사 정도는 불러 드릴 수 있습니다.”'그녀를 얕잡아 보는 말투였다. 건조한 어조였으나 지원의 귀에는 달가울 리 없는 알량한 선심일 뿐이었다. 지원은 눈을 잠시 내리깔더니 곧바로 치켜떴다. 그녀는 우아하게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지원이 갑자기 다시 신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곧바로 표정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한지원 씨……? 기사 정도……?”'의도적으로 내리깐 음성. 미묘하게 치켜 올라간 눈썹. 아직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듯 끌어올리는 입가. 지원은 숨을 크게 들이켜더니 피슬 웃었다. 그리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오랫동안 바닥을 내려다보며 이따금 묘한 미소를 흘렸다. 신우가 미간을 잔뜩 찌푸릴 즈음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건방떨지 마.”'지원은 손에 들고 있던 클러치로 그의 가슴팍을 툭 건드렸다.'아무도 없다. 그녀가 지켜야 할 사람도, 그녀를 지켜 줄 사람도. 유일한 혈육은 죽었으며, 그녀의 수중에 있어야 할 모든 돈들은 박 대표와 그의 일가에 있었다. 그녀가 지금 이 순간 가질 수 있는 것은 너덜너덜한 자존심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들키지 않으리라. 그 어떤 때보다 더 당당하고 대담해지리라. 그 누구도 그녀의 약점을 파고들 수 없게 견고하고 단단해지리라.'“네가 아니어도 너 같이 돈 많은 새끼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지원은 먹먹해진 눈빛을 감추며 고고하게 눈을 뜨고 신우를 똑바로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