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현과 하정빈. '이 시대 최고의 가수이자 배우. 언론에서 부추기는 라이벌 관계를 이루지만 사실을 구체적으로 따져 본다면 실상은 조금 다르다. 강재현은 누가 뭐래도 현재의 톱스타지만 하정빈은 한때 톱으로 지금은 ‘톱’이 아닌 그냥 스타급이다. '인기 면으로 현재 정빈이 뒤질지는 몰라도 실력 면에선 정빈도 만만치 않다. 누가 더 낫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 가수로 말할 것 같으면 작곡까지 하는 재현이 더 나아 보이지만 연기 면에서는 작가가 원하는 캐릭터 그 이상을 보여 주며 상당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정빈을 재현은 아직 쫓아갈 수 없었다.'솔직히 연기로 먼저 데뷔를 한 정빈은 벌써 10년 차, 재현은 이제 3년 남짓 되어 두 사람을 비교한다는 게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재현의 데뷔 초부터 주변 및 방송, 팬들이 두 사람을 라이벌 관계로 만드는 바람에 두 사람에게는 항상 안 보이는 신경전이 뒤따랐다. '슬슬 연기 영역까지 손을 뻗친 재현은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는 정빈의 안정적인 연기력을 탐냈고, 정빈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재현의 작곡 능력을 탐냈다. 그리고 정빈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비감을 유지하고 있는 재현의 이미지였다. '정빈은 2년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작품을 했던 여자와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었고 바람둥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반면, 재현은 스캔들 한 번 나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였다. '적당한 카리스마의 은근한 귀여움이 매력이 있는 재현이라면 정빈은 냉철하고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젠틀한 매력이 있었다.'서로의 매력 포인트가 달라,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의 신경전이 오히려 더 한 것 같았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서로에게 없는 것들이 더 탐이 나니깐.''“강재현. 강재현.”'모 가요프로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던 정빈이 ‘강재현’이라고 외치는 방청객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정빈의 라이벌인 재현이 바로 정빈의 앞 차례에서 컴백 무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빈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현란한 사이키 조명 밑에서 열정적으로 춤만 추며 립싱크를 하는 모습이 어딜 봐서 자신과 비교가 된다는 말이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찰나였다. 댄스곡이 끝나자, 곧바로 나지막한 피아노 선율이 전주에 깔리며 슬픈 발라드가 시작되었다. 정빈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정빈이 듣기에도 가슴에 와 닿는 노래였다. '‘저 노래가 내 노래였어야 하는데, 누가 작곡한 거야?’'정빈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정빈의 매니저가 정빈의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말했다.'“이번 노래도 좋은데? 또 대박이겠어. 강재현이 작곡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단 말이야.”'매니저의 말에 정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거 강재현이 작곡한 거야?”'“어. 앨범에 하나는 꼭 싣잖아.”'“확실해?”'“갑자기 왜 그러냐?”'틀렸다. 이번엔 정빈의 패였다. 하지만 정빈은 졌다는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꼬투리를 잡았다. 반주에 깔린 피아노가 노래를 살린 것이라고. 절제된 듯한 화음과 리듬이 노래를 살려 주고 있다고.'정빈이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지 씁쓸한 미소를 짓는데 매니저가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끝났나 보다. 올라갈 준비해. 이번 앨범 마지막 무대야. 마지막까지 잘해 보자고.”'어느새 노래가 끝났는지 멋진 컴백 무대를 보여 준 재현에게 보내는 함성이 들려왔지만 정빈의 머릿속에는 함성대신 노랫가락이 몇 번이고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들이 재현의 컴백 무대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을 한 후, 아쉽게도 이번 앨범의 아듀 무대를 갖는다는 정빈을 소개하자 정빈이 익숙한 거짓 미소를 짓고 무대로 올라섰다. 수많은 함성들과 정빈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재현만큼은 아니었다. '라이벌이라고 했던 강재현은 어느덧 정빈을 제친 지 오래였다. 워낙 톱 자리를 오래 유지했던 정빈인지라, 쉽게 무너지진 않았지만 기분이 참 묘했다. 좋을 리는 없었다. 정상을 한 번 맛본 후라 그런지, 씁쓸했다. '한편, 그 정상에 서 있는 재현은 만족스러운 컴백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재현의 주변에 있던 여자 가수들은 하나같이 재현을 치켜세워 주며 어떻게 하면 재현의 눈에 들 수 있을지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오빠, 노래 너무 좋아요.”'“이번에도 뜰 거 같은데요?”'“어머 얘는. 언제는 대박 아니었어? 얼마나 곡이 좋으면 강재현이라는 이름만 믿고 무조건 앨범을 산다는 소리까지 있겠어? 오빠, 다음엔 저한테도 곡 좀 써 주세요. 오빠 노래 불러보고 싶어요.”'뻔히 들여다보이는 말. 재현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라 이런 멘트도 이젠 재현에겐 지겹다. 정말 재현을 좋아해서 다가오는 여자와 재현과의 관계로 재현을 밟고 위로 올라가려는 여자. 이 두 가지 케이스의 여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접근해 오기 때문이다. '이런 여자 가수들을 대처하는 방법은 이미 익숙해서 재현도 잘 알고 있다. 여자 가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법이라고나 할까. '재현이 연예계에 발을 담그고 제일 먼저 배운 것은 바로 처신술이었다. 여태껏 자잘한 스캔들 하나 없이 정상에 오른 그라 특히 더 자기 관리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대에서 공연을 마친 정빈이 대기실로 들어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재현을 보곤 눈꼴 시리다는 표정으로 비웃으며 그 주위를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그러자 재현이 그런 정빈을 보곤 불러 세웠다. '“정빈이 형. 가시는 거예요? 오늘이 마지막 무대였다면서요? 아쉽네요. 같이 활동하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