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봉아, 나봉아! 정신 차려!”'경주는 호스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 나봉의 뺨을 찰싹찰싹 때려가며 정신을 차리게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풀기 없이 축 늘어진 손과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얼굴빛……. '어쩔 수 없이 쓰러진 나봉을 들쳐 업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옮긴 경주는 십 년 감수한 느낌이었다. 응급실 의사들에게 맡긴 후로 겨우 한숨 돌렸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 것 같아 경주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한 시간 넘게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나봉이 정신이 돌아오지 않자 병원 측에서는 입원을 권유했고 담당 의사는 나봉이 쓰러질 때 상황을 설명하는 경주의 말을 참고하여 쇼크로 인한 일시적인 혼수상태와 스트레스성 과로로 인한 신경 쇠약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응급실 퇴실 절차를 마치고 경주가 나봉의 병실에 들어갔을 때 나봉은 링거 줄을 주렁주렁 꽂은 채 죽은 듯이 두 눈을 꼭 감고 누워 있었다. 경주는 곁에 다가가 앉아 나봉의 얼굴에서 땀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치워주며 중얼거렸다. '“알아. 네 마음. 그런데 그 사람이 그렇게도 중요한 사람이었니?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얼마 만나 보지도 못했잖아?”'하지만 여전히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쌔근쌔근 아이처럼 평화로운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아픈 환자라기보다는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지금 나봉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제주도에 계신 나봉네 식구에게 연락을 취할까, 하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결국 경주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경주는 죄책감에 멈칫했다. '그러나 나봉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보다는 어처구니없이 호스트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나봉의 부모님이 알면 무어라 할까. '그저 서울에서 탤런트 생활하며 바쁘게 잘만 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실 텐데.'그래서 경주는 나봉 스스로 이겨나가게 내버려두자고 결정했다. 결국엔 시간이 흐르면 다 나을 것이다. '“나처럼.”'나봉을 지켜보며 경주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지금 경주는 속으로 땅을 치고 싶을 만큼 후회막심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나봉이 일전에 그 호스트를 다시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안달을 부렸을 때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게 해 줄 것을 그랬다고, 그랬으면 이렇게까지 나봉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라고.'아니, 처음부터 이런 해괴망측한 버진 탈출 계획 같은 것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바로 자신이 나봉을 망쳐놓은 것이라고 자책하며 경주 역시 눈물을 흘렸다. '“사랑이란 게 이렇게 아픈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