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엄청 사랑하게 될 남자?”'어어? 이번에는 웃지 않으려고 미간에 안간힘을 주는 재영이다. 그렇담 표정을 숨길 수 없게 해주지. 한 손을 들어 쭉 뻗었다. 그의 티셔츠가 손에 닿자 멱살을 쥐듯 옷을 움켜잡았다. 그리곤 힘껏 잡아당겨 주니 멍 때리던 재영의 얼굴은 내 코앞에 보이게 됐다. '“쪽.”'“저기, 지우 씨. 이거,”'살짝 뽀뽀를 해 주고는 놓아주는 척하다가 깊게 입술을 부딪쳤다. 하지만 짧게! 사뿐히 그를 제자리에 놓아주고 잡았던 옷도 잘 펴주는 척 툭툭 털어줬다.'“지금 키스하고 싶은 남자 정도?”'“…….”'눈을 크게 뜨고 나를 몇 초간 쳐다보던 재영은 내 눈을 피해 시선을 내렸다. 머릿속은 포화상태인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가 보다. '“왜요? 아쉬워요? 누워 드려요?”'“예? 아닙니다. 아니에요.”'눕는 시늉을 하면서 또 놀려 줬더니 어찌나 반응이 올바르신지 골리기 재미에 푹 빠져 버릴 것 같다. 다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화가 난 듯 또 소리를 지른다.'“아니, 무슨 여자가 그렇게 쉽답니까? 누워 주다니요. 그게 뭡니까?”'“믿으니까요.”'“예?”'재영의 어벙한 표정이 너무 귀여워 휴대폰을 들이대 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당신이 나를 소중히 대해 줄 것이라는 걸 믿으니까요.”'“다, 다음 질문.”'“그날, 내가 때리고 간…… 날 말이에요. 그리고 뭐했어요?”'“아.”'손가락을 바닥에 대고 톡톡 치며 잠시 고민하던 재영은 나를 향해 한 번 싱긋 웃어 주고는 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셔 버렸다. 내 얼굴에도 흐릿한 미소가 번졌지만 침묵을 주는 재영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 마음껏 웃어 주지는 못했다.'“내 차롑니다. 음.”'목소리를 한 톤 높여 밝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따뜻했다.'“당신의 그 사랑스런 ‘조’, 그 사람 만나면 무슨 말하고 싶었습니까?”'“맞다. 그 사람 안 만나게 해 줘요?”'“대답이나 하십쇼.”'별스럽지 않은 질문에 망설이게 된다. 진실게임인데 진실을 말해야겠지? 이번엔 내 얼굴이 괜스레 붉어지고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조그만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래 봤자 집 안엔 우리 둘 뿐이고 고요한 밤이라 안 들릴 리가 절대 없었지만.'“어떻게 하면.”'“어떻게 하면?”'“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재영이 내가 무슨 말은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저도, 에잇. 저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하면 그런 세심한 글을 쓰고 멋진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도와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뭐, 힘도 써 주면 좋고.”'“비밀이라더니 별거 아닙니다.”'그는 허탈한 웃음을 짓더니 다시 술잔을 들었다. '“재영 씨가 힘 좀 써 줄래요? 글은 잘 못 써도, 가르쳐 주면 되잖아요?”'“싫습니다. 드십쇼.”'“어? 복수하는 거예요?”'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어쩔 수 없이 잔을 들었다. '“이신혁 보고 어땠습니까?”'술을 입에 대기도 전에 날아 온 질문에 하마터면 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 대답하면 안 마셔도 돼요?”'시선을 밑에 두고 그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별로 안 좋았어요. 그새 다 잊었었나 봐.”'들고 있던 잔을 재영에게 내밀었다. 재영은 내 잔을 받아들고 마시려고 했다.'“잠깐, 그전에 사실을 아는 게 좋을 거라고 했잖아요. 근데 오히려 거짓말을 했어. 왜, 그랬어요?”'“…….”'“대답하면 안 마셔도 돼요. 아니, 이건 마시지 말고 대답해요. 듣고 싶어요.”'“당신이, 당신 사랑을 부정할까 봐, 미워할까 봐.”'“…….”'“그랬습니다. 거짓말이 들켜 버렸지만.”'말을 마친 그는 술을 마셔 버렸다. 고이는 눈물을 억지로 눌러 담았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3년이란 시간이, 열정이, 내 사랑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 같았다. 한두 달도 아니고 3년을 그렇게 감쪽같이 속았을까. 재영의 말대로 어쩜 의심한 번 하지 않았을까. 내 스스로를 원망했고 후회했다. 돌릴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신혁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면 강재영이라는, 나에게 과분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나 화장실 갔다 올게요. 대답할 준비하고 기다려요.”'“예. 예.”'바닥은 울렁거려 제대로 걷지 못하겠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이미 영어 발음하듯 굴려졌다. 별로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연거푸 들이켰더니 취기가 한꺼번에 올랐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하고 정신 좀 차려 보고자 뺨을 살짝 때리고는 밖으로 나왔다.'“어? 자네. 재영 씨. 재영 씨. 에이, 강재영.”'한껏 웅크린 자세로 추운지 몸을 더욱 움츠리며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온다. 술도 잘 못 마신다더니 주는 술을 넙죽, 넙죽 잘 받아 마시기에 꽤 주량이 센 줄 알았다. 한데 금세 잠이 들어 버리다니. 내가 덮고 있었던 이불을 끌어다 덮어 주고는 술을 대충 정리에 주방에 가져다 놓고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몸이 잘 세워지지 않아 남은 자리를 비집고 누우니 그의 얼굴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재영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술버릇은 자는 거? 합격.”'내 머릿속에서 하라는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느릿느릿 한 손을 그의 얼굴에 올려놓았다. '“고마워요.”'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누가 나를 드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이 슬쩍 떠졌다. 어스름한 새벽빛 사이로 보니 재영이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던 나를 들어 침대에 반듯하게 눕혀 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몽롱한 정신을 붙잡아 돌아서는 그의 팔을 잡았다. '“나 팔베개 해 줘요.”'“아, 저는 바닥에서.”'“오늘은 기억해요. 헷갈리지 않으니까.”'혹시나 처음 만났을 때처럼 기억도 못하면서 안아 달라고 하는 거라고 오해할까 봐 친절하게 설명도 해 주고 침대 끝으로 움직여 재영이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결국 그가 내 옆에 눕게 했다. 당연한 것인 양 팔베개를 척 하고 내 팔을 그의 가슴에 둘러 꼭 안았다.'“이러지 마십쇼.”'재영은 당황한 듯 내 팔을 걷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앙탈 부리며 다시 팔을 원위치 시켰다.'“아아, 좀 봐줘요.”'찰나의 순간, 그의 얼굴이 내 앞으로 왔다. 어두운 방 안에 작은 불빛만 새어 들어오고 있었지만 재영의 표정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랫입술을 살짝 물고 아까와는 다르게 졸음은 전혀 없는 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자꾸 이러면 나, 사고 칩니다.”'“체, 칠 수 있으면 쳐 보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