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친구라고? 많이 먹어요.”'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차 원장은 강혜의 접시 위에 구운 고기를 연신 올려놓았다.'정원 한쪽 귀퉁이에 연못이 있고 아름다운 정원수가 가득한, 아직은 쌀쌀한 듯 느껴지는 정원 한가운데 이동식 난로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일하는 사람 둘, 그리고 영주의 가족. 그녀.'이방인 같다. 어디에서든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강혜는 희미하게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타들어 가는 장작에서 시선을 거두었다.''혁은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겨우 17살이다.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든 여자가 영주의 친구라니! 그것도 열일곱의 고등학교 1학년이라니.'필히 미친놈 소리를 들을 법하다. 아직 그녀는 미성년자에 이제 막 고등학교를 입학한 어린애였다.'하지만, 그녀는…… 정말 맛있게 먹는다.'한 손 가득 상추쌈을 말아 저 귀엽고 작은 입속으로 밀어 넣는 그녀의 모습이 못내 사랑스러울 정도다. 불뚝 튀어나온 양 볼마저 아름답다.'그녀가 열일곱의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혁의 눈빛이 짙어지며 벽난로 불빛 탓인지 강혜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 빛이 나는 듯 했다.'“아빠! 강혜가 생명공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서재에 있는 책 빌려 줘도 되죠?”'“허허. 나하고 관심 분야가 비슷한 모양이로구나. 얼마든지 가져다 읽으렴. 시중에 팔지 않는 희귀한 책들도 많단다. 원서로 된 것도 많을 텐데.”'“아빠! 우린 학교에서도 원서로 된 책으로 공부한다고요.”'뽀로통하게 말하는 영주를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차 원장을 강혜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처음 영주를 보았을 때 그녀의 표정이 빛나는 이유를 알았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은 어디에서든 빛이 나 보였다.'아까부터 고기에는 전혀 손도 대지 않고 와인 잔만 뚫어질듯 바라보는 혁에게 강혜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당히 햇볕에 그을린 건강해 보이는 피부와 한 일자로 꾹 다문 고집스러워 보이는 그의 입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영주가 다른 여자들에 비해 큰 키를 가진 것처럼 그녀의 오빠도 평범한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커 보였다.'입술에 시선이 가 있던 강혜의 눈이 그의 코를 지나 눈으로 멎었을 때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그의 시선과 정면으로 부딪혔다.'벽난로 불빛에 반사된 탓인지 순간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대전까지 주말에 내려가기 힘들 테니 강혜 양만 괜찮다면 주말에 영주하고 같이 오는 게 어때요?”'따뜻한 웃음으로 강혜를 바라보며 김 여사가 영주의 눈치를 살폈다.'“서재에 마침 강혜 양이 흥미롭게 여기는 책들이 많다고 하니, 여기 와서 책도 읽으면 좋을 텐데. 주말이라도 집에 영주만 있는 날이 많아요. 혁이는 곧 영국으로 들어갈 테니, 아무래도 강혜 양이 같이 와 주면 좋을 텐데.”'“저는…….”'강혜의 손 위에 살포시 놓이는 김 여사의 따뜻한 손에 강혜의 눈빛이 흔들렸다.'처음으로 만져 보는 따뜻한 손이다. '“감사합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폐는 무슨…… 자주 와서 편하게 지내다 가요.”'“말씀 편하게 하세요.”'“그래? 담에 오면 편하게 말할게요.”'“엄마! 나 9시까지는 기숙사에 들어가야 해.”'시간은 벌써 8시가 넘어서고 있었다.'“다 먹었음 준비하고 내려와라. 태워다 줄게.”'혁은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서서 현관 입구로 들어갔다.'''영주와 강혜를 기숙사 입구에 내려주고 혁은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백미러로 기숙사로 들어가는 강혜의 뒷모습을 응시했다.'한숨만 나올 뿐이다. 혁은 도로변 한쪽에 차를 세우고는 담배를 찾아 입에 물었다. 담배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조금 안정되는 듯하다.'그렇게 한동안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그녀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는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이강혜.'“후…….”'혁은 하루 빨리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