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선생님이라니……. 어리둥절한 표정의 인환을 바라보는 재은은 자못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같은 말을 반복했다.'“네? 제 선생님 해 주세요.”'“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게 설명하지.”'“제 꿈은요, 멋진 여자가 되어 상류 사회로 진출하는 거예요. 하지만 가방 끈도 짧고, 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도 없고, 주변엔 저랑 비슷비슷한 사람들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좀팽이, 아니 그쪽은 상류 사회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저 좀 가르쳐 주세요. 네?”'조금이 아니라 많이 당황스러웠다. 인환은 이렇다 하게 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상류 사회 사람이라……. 무슨 기준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보통이 아닌 꼬맹이였다. 물 컵을 내려놓은 인환은 자세를 좀 더 편안하게 잡았다. 그리고 짧은 심호흡을 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재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이 할 일은 아닌 듯싶었기에 거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려는데 재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사례는 할게요. 말씀만 하세요. 그러니까 부탁드려요. ……제발.”'인환의 입이 열리지 않자 재은이 간절함을 담아 마지막 부탁을 했다. 과연 그의 입에선 어떤 말이 나올까?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은 채 인환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에 인환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절실한 목소리에 약간 과장된 그녀의 몸짓이 마치 연극배우를 보는 듯했다. 사례라……. 저번의 빚은 이 점심으로 갚는 것이니 그녀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인환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에게 자꾸 기울어지는 관심이 스스로도 부담스러웠지만 그녀의 제안은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는 건가?”'“네.”'인환이 희망의 말을 하자 재은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보일 듯 말 듯 잔잔히 퍼진 그의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허락의 의미로 보였다.'“좋아. 정확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정말이요! 고맙습니다.”'양팔을 벌려 바닥에 대고 이마를 바닥까지 숙이며 연신 인사를 하는 모습이 역시 연극배우 같았다. '“일단 밥부터 먹고.”'“네.”'이제야 환한 웃음 웃은 재은은 편하게 자세를 잡고 한 상 가득 차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환한 웃음을 가득 머금은 그녀의 얼굴은 예뻤다. 일 저질렀구나, 조인환. 하지만 이런 일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인환도 웃으며 점심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