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물러가고 푸른 여명이 밝아왔다. 여름의 신선하고 청량한 기운을 머금은 나무와 들풀이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나고, 새와 풀벌레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露)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푸른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오늘 태어난 정령님들은 아주 고운 분들이겠는걸.”'새벽빛이 깨끗할수록 이슬에서 태어나는 정령은 곱고 어여쁘다. 로는 이제 태어날 정령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마냥 좋아져서 경쾌한 노래를 흥얼거렸다.'“자, 그럼 이제 가볼까.”'투명한 이슬로 변한 로는 바람에 몸을 싣고 들로 달렸다. 이슬에서 태어난 정령의 여신 로(露). 새벽은 하루 중 가장 바쁜 때였다. 이슬 속에 잠든 정령들을 깨우고 빛을 머금고 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햇빛을 머금고 쑥쑥 자란 정령들을 보는 건 로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들판에 이르자 그녀는 사람으로 변해 땅 위에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새벽빛에 드러난 로의 얼굴은 곱고 깨끗했으며 크고 맑은 두 눈은 바위를 깨고 캐어낸 보석처럼 빛났다. 빛을 머금어 더욱 푸른 눈동자와 윤기가 흐르는 검은 눈동자. 누구나 보면 감탄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정령들을 깨우는 시각에 이르면 더욱 영롱하게 반짝였다.'로는 풀잎에 맺힌 이슬 속에서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정령을 보았다. 꽃씨처럼 작고 앙증맞은 정령을 향해 훈훈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자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을 반짝하고 뜬다. 힘껏 기지개를 켜고 나온 정령이 투명한 날개를 활짝 펴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이제 막 태어난 정령은 빛을 한껏 머금고 자라 자연이 하는 일을 거들거나 신(神)을 모셨다.'“이 게으름뱅이들. 빨리 일어나.”'로의 말에 이슬 속에서 게으름을 부리던 정령들이 나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아침빛을 가득 머금은 정령들은 발랄하게 주위를 날아다니며 까르르 웃기도 하고 로의 옷을 장난스럽게 잡아당기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로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때 해가 비치는 동쪽으로 날아가다 다시 돌아온 정령이 귓가에 속삭였다.'“여신님, 여신님.”'“무슨 일이지?”'“저기 보이는 해님께 가까이 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요.”'“넌 그분께 가까이 갈 수 없어. 그분은 너무 멀리 있고 네 날개는 가냘프단다.”'“가고 싶어요. 가까이서 그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요.”'“꼭 가까이 가야만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란다. 그분은 늘 네 곁에 계실 거야.”'다른 정령들보다 유난히 흐린 빛을 띠는 정령이 다가와 울먹이며 말했다.'“전 가장 쓸모없는 정령이 될 거예요. 볼품없이 작고 아름답지도 않아요.”'로는 우는 정령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