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도서인 휴(休)의 출간기념 파티를 준비하면서 출판사 내부는 거창한 행사라도 하는 양 연일 분주했다. '송년회를 제외하고는 그럴 듯한 행사가 없기도 했거니와, 워낙 쟁쟁한 필진들이 참여한 책인지라, 매스컴에서 두드러진 관심을 보이는 까닭에 대충 간단한 행사로 끝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기회에 도서출판 한뉘의 홍보를 한껏 하자는 직원들의 묘안이 더해지면서, 행사는 일식집 연회장을 빌리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됐다.'초대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일일이 초청 전화와 우편물을 발송하는 건 기획실장인 소정의 몫이었다. 평소 출판사와 인맥이 있던 평론가과 문화부 기자들을 비롯해 몇몇 작가들까지, 대충 추린 인원만 해도 팔십여 명이 넘었다. 거기에다 직원들과 외근을 맡고 있는 영업팀 사람들까지 포함하니 백 명이 훌쩍 넘었다. '‘여러 차 문화’에 익숙한 문화계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2차와 3차 장소까지 물색하는 것으로 대략적인 준비까지 끝내 놓은 소정은, 출근을 하자마자 꽃집에 전화를 걸어 근사한 꽃다발을 주문했다.'저녁에 있을 출간기념 파티의 주인공 중에는 자신의 연인인 이한도 있기에.'부족한 사랑밖에는 줄 게 없다며 시종 가슴을 아프게 했던 그는, 세상에 이렇게 자상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심하고 꼼꼼한 남자였다.'얼떨결에 애인이 되기로 했던 그 날, 그가 선물해 준 꽃다발을 안고 찍은 사진이며, 침대 시트 위에 장미 꽃잎으로 곱게 수놓아져 있던 고백은, 이한이 선물해 준 앨범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와 정식으로 사귄 지 삼 주가 지난 지금은 앨범의 삼분의 일 정도가 자신들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그는 소정이 정시에 퇴근을 하는 날은 가까운 근교를 드라이브 시켜주거나, 야경이 근사한 카페에 데려가곤 했고, 하루에 두세 번 이상은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 주말에는 소정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가 심플한 커플링을 하기까지 했다.'한때 채동석이란 남자와 사귀었던 일을 잊은 건지, 아니면 잊은 체 해 주는 건지, 출판사 직원들은 툭하면 막 연애를 시작한 소정을 놀려대곤 했다. 그런 순간이면 소정은 마냥 행복해지곤 했다. 부인하는 대신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소정 씨, 오늘 의상 너무 죽이는 거 아니야?”'초대한 손님들에게 선물할 증정용 도서를 챙기는 소정의 귀에 현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굴던 현정은, 근래 들어 어색할 정도로 사근한 말을 건네올 때가 많았다. '서류봉투에 담긴 도서의 개수를 확인한 소정은 굽혔던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홍색 트위드 재킷에 흰색 슬랙스를 입은 현정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자신을 백안시 할 때도 그랬지만, 이런 현정의 모습 또한 소정에겐 일말의 불안감을 자아냈다.'“준비 다 하셨어요?”'“대충 다 된 것 같아. 참 끝 차 때 쓸 술은 어떻게 할 거야?”'“아, 그건 주류 백화점에 가서 사려고요.”'“남는 사람들은 방 잡아줘야 하는 건가?”'“그게 관행이거든요.”'“술 사러 가야겠네, 그럼?”'“네, 정리 다 됐으니까 나가서 술만 사면 될 거예요.”'“그럼 같이 가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