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대학 병원의 복도를 한 여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병실을 찾는지 문에 적힌 환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살피며 병원을 헤집고 다녔다. 씩씩하게 뛰어다니기는 했지만 여자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보였다. 그녀는 병실 문에 적힌 환자들 중 자신이 찾는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는지 황급히 병실 문을 열어 젖혔다. '“아, 아빠!”'가냘파 보이는 체구에서 터져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병실 안의 환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곱게만 자라 손에 물 한 방울도 안 묻혀 봤을 것 같은 곱상한 외모에 허리까지 늘어뜨린 까맣고 긴 머리가 아름다운 여자였다. 하지만 그런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물이 빠진 청바지와 닳을 대로 닳은 운동화 차림이었는데, 그 모습이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소녀 같은 옷차림이 오히려 그녀의 모습을 더욱 생기발랄하게 보여 주는 듯했다.'“어, 어, 딸, 금방 왔네?”'그녀는 부친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친의 침대에 고개를 파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정신없이 울어 대는 여자의 얼굴은 빨갛게 부어 갔고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그녀의 울음소리에 병실 안이 소란스러워졌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서러움에 복받쳐 가녀린 어깨를 떨며 울어 대는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빠! 아빠!”'여자는 부친을 보자 마음이 놓였는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안도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여자는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얼굴에 난 상처를 숨기려 노력하는 부친의 행동에 더욱 마음이 쓰려 왔다.'“왜 울어, 왜, 아빠 괜찮아, 울지 마, 인마.”'창식은 딸의 소란스럽고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랐지만 밝은 미소로 그녀를 반겨 주었다. 자신의 사고로 딸이 얼마나 놀랐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잔소리를 들을 준비도 함께 하고 있었다. 창식이 조마조마해하고 있는데, 그 때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녀의 속상한 음성이 들려왔다.'“바보같이 왜 또 다친 거야, 아빠 없으면 나 못 산다니까! 이게 뭐야, 이번에는 팔, 다리 전부 다친 거야? 부러진 거야? 괜찮아? 아프지 않고?”'그녀는 서럽게 흘리던 눈물을 애써 꾹 참고 부친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런 작은 체구 어디서 저렇게 크고 갈라지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와 함께 방금 전까지 그녀를 동정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의구심으로 바뀌어 갔다.'“그래, 그래, 아빠가 이번에도 미안, 응? 미안해. 잘못했어, 정말로. 그러니까 그만 울어,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