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황국 건립 127년.'“그놈 참…….”'흰머리가 성성한 도위 장숙개는 아까부터 사예 교위인 도서온의 곁에 서 있는 아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다.'동글동글한 이마에 장난기가 촬촬 넘치는 까만 머루 알 같은 눈은 상당히 개구지게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귀족과 같은 기품이 흘렀다. 걸치고 있는 바지저고리가 조금 남루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반듯하고 총명해 보이는 인상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베어 물게 만들었다.'“씩씩해 보이는군.”'“아, 네…….”'변방의 사예교위인 도서온이 난처한 낯으로 장도위의 말을 받았다. 서온의 낯빛이 어색하게 변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장도위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귀골이네. 참으로 장군감일세.”'“저기, 딸입니다.”'서온이 난처한 듯 주저하며 털어놓았다.'“아, 그런가?”'서온의 말에 의외라는 듯 장도위는 서온의 옆 자리에 자리를 잡고 서 있는 꼬마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다시 보니 장군감이었던 아이는 순식간에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아리따운 귀태를 자랑하는 여아로 변신해 있었다.'“귀인이 될 상이로고.”'관상을 볼 줄 아는 장도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온의 딸을 쳐다보았다. 서온 역시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쳐다보았다. '어미 없이 키운 여식이라 부족한 데 많고 서투른 곳도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장도위의 칭찬에 역시 아비인지라 기분이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이 아이는 백제 왕실의 핏줄을 이어받은 몇 되지 않은 후손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오늘은 태황국 황후가 될 예정인 가실국의 설지 공주가 태자와의 가례를 위해 행차하는 날이었다. 이곳 황주현을 지나기 때문에 변방 수비대를 이끌고 있는 사예교위인 서온은 일찌감치 군사들을 정비하여 호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굳이 따라가겠다고 울고불고 떼를 쓰는 여덟 살 딸아이를 데려오지 않을 수 없어 이렇게 곁에 두고 있는 것이었다.'“이름이 무어던가?”'“청라입니다.”'“도청라라…… 아름다운 이름이로군.”'“과찬이십니다.”'하지만 정작 이야기의 장본인인 청라는 장도위와 서온이 나누는 대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청라의 두 눈은 이미 저만치 등장하기 시작한 화려한 행렬에 못 박혀 있었다.'길게 늘어선 무장한 호위 무사들과 겹겹이 마차를 둘러싼 형형색색 아름다운 옷을 걸친 궁녀들의 모습은 상당히 이국적이었다. 그리고 행렬의 한가운데 황금빛 화려한 가마 속에는 분명 태황국의 황후가 될 분이 타고 있을 터였다.'청라는 두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가마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안에 있는 공주의 모습을 보고 싶어 청라는 어젯밤부터 잠도 못 자고 밤새 뒤척거렸더랬다.'‘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