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부산스런 아침.'준비를 마친 유정이 제일 먼저 식탁에 앉자 곧바로 윤희가 이제 막 끓은 미역국 한 그릇을 유정의 밥 그릇 옆에 놓았다. '“엄마, 유선이 어제 늦게 들어왔어?”'“응. 알바생 하나가 그만둬서 송별회 했다더라.”'“안 깨우려고?”'“응. 오늘 수업 늦게 있으니까 실컷 자게 내버려둬. 아무리 먹을 걸 좋아해도 겨우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나진 못할 테니까.”'“그럼 엄마가 말 좀 전해줘. 유선이 MP3 내가 오늘 하루만 빌려 간다고.”'유정의 앞자리에 앉아 이제 막 수저를 든 윤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MP3? 네 것 놔두고 왜 동생 껄 가져가?”'“유선이가 내 꺼에는 뮤릭 노래 다운 안 받아줬거든.”'“아, 그 이상한 화장한 애가 노래하는 밴드?”'유정은 미역국을 한입 가득 넣은 터라 대답은 하지 못하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유선은 3년 전 뮤릭이 데뷔했을 때부터 그들의 광팬이었다. 그와 달리 유정은 요란한 치장을 하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 보컬도 싫었고 그들이 하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헤비메탈이란 음악도 싫어 라디오나 TV에서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었다.'그런데 어제 라디오를 듣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고 그 노래가 바로 뮤릭의 4집 앨범 타이틀곡인 [마지막 서리가 내리던 날]이라는 걸 알고 유정도 뮤릭 아니, 정확히는 뮤릭의 노래에 관심이 생긴 것이었다.'“걔네들 만날 시끄러운 노래만 부른다고 심란하다고 싫다더니 어쩐 일로 노래를 좋다고 해?”'몇 번 씹지도 않고 대충 음식물을 넘긴 유정이 입 언저리를 손바닥으로 훑어내며 말했다.'“만날 시끄러운 노래만 부르는 줄 알았는데 이번 노래는 잔잔하니 제법 들을 만하더라고. 제목도 근사해. 마지막 서리가 내리던 날, 멋있지? 나, 엄마한테 말했으니까 엄마가 유선이한테 말해주기다?”'“알았어. 꼭꼭 씹어서 얼른 먹어.”'말이 좀 안 되는 듯한 윤희의 재촉에 유정은 싱크대 서랍의 손잡이에 달린 조그만 시계를 보았다. 시간을 확인하자 마음이 급해진 유정이 연거푸 세 숟가락의 미역국을 한꺼번에 입에 들이밀고는 짱구처럼 미어터질 듯한 볼을 하고 제 방으로 향했다. '그 사이 출근 준비를 마친 동석이 식탁에 앉았고 잠시 후 가방을 옆으로 둘러맨 유정이 하늘색 파스텔 계열의 남방과 조금은 품이 넉넉한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엄마, 아빠 저 출근해요!”'유정의 부산스러움에 시끄러웠던 집안은 유정이 문을 닫고 사라지면서 평온해졌다.'그리고 이제 막 밥을 먹기 시작한 동석에게 윤희가 물었다.'“당신 내일 영등포 거래처에 들러서 바로 퇴근한다고 했죠?”'“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