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맞춘 듯 부드럽게 돌아가는 키에 진서는 목련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잠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지난 2년 동안 지독히도 그녀를 괴롭히던 두통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곳이던가.'집 안에 보이는 모든 물건들은 2년 전 그대로였다. 계약서에 써 놓은 대로 이 집에 세 들어 사는 남자는 집에 조금도 손을 대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계약 사항에 없었던 부엌은 조금 많이 달라 보였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지금 남자가 지내는 방도 그러하리라 짐작하며 진서는 2층으로 올라갔다.'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집을 전세로 내어 주며 진서는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걸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2층을 청소하게 해달라고 했었다. - 그전엔 유미가 관리를 했었다 - 단, 아무 흐트러짐 없이 모든 물건은 그 자리에 놓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2년 만에 찾았음에도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잠시 2층에 있는 작은 거실을 둘러보고 방으로 들어온 진서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세탁을 한지 얼마 안 됐는지 이불은 폭신하고 좋은 향기까지 났다. 편안했다. 너무도 편안해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잠시 편안한 여운을 즐기던 진서는 오랜 비행으로 피곤이 쌓여 그런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천하장사도 이길 수 없다는 눈꺼풀이 결국 그녀의 맑고 커다란 눈동자를 덮었다.''늦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해중은 낯선 구두에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의 신발 외에는 그 어떤 신발도 놓일 수 없는 공간에 붉은 힐이 놓여 있자, 온몸에 불안감이 감돌았다. 도대체 왜 이곳에 여자 구두가 놓여 있단 말인가.'잠시 멍하니 그 구두를 바라보던 해중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여러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허락 없이 이 집에 들어올 정도로 깊은 관계를 가진 여자는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버젓이 구두가 놓여 있다는 것은 도둑도 아니라는 것이었다.'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해중은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았다. 침실부터 욕실까지 곳곳을 둘러보았지만, 신발의 주인은커녕 사람이 왔다 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저 구두는 무엇이란 말인가!'“혹시…….”'1층에서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한 해중의 시선이 2층으로 옮겨졌다. 이곳에 살게 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그는 2층에 거의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고작해야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청소하는 것을 지시하기 위해서 서너 번 찾은 것이 전부였다. 이 집에 살게 되면서 집주인과의 계약 사항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문득 2층에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1층에 구두의 주인이 없으니, 2층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해중은 입 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키고, 대리석이 깔려 있는 계단 위로 발을 옮겼다. 위로 올라오자, 1층과는 다른 느낌에 공간을 바라보는 해중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붉은 소파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커다란 캐리어 두 개가 그의 동공 안에 가득 채워졌다.'“저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