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솜씨 끝내준다. 인터넷에서도 반응이 괜찮다며?”'“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것 같아. 덕분에 일이 재미있어.”'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였고, 항시 붙어 다녀서 학창시절에는 껌 딱지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너만 잘나가고 난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한숨을 내쉬는 채은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마리까지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채은은 항시 밝은 면만 보려고 노력하는 아이였다.'“넌 신부수업 받고 있잖아.”'“내가 마치 도살장에 끌려 다니는 기분이라 정말 싫어.”'며칠 못 본 사이에 채은이 많이 시달렸던 모양이다. 마리가 일을 하는 동안 채은의 결혼 날짜가 잡혀졌다. 외동딸이고 보니 부모의 극성도 수위를 넘어서는 모양이었다. 그런 일들을 즐겨하던 채은이었지만 워낙 시달림을 받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었다. 처음 결혼날짜가 잡혔을 땐 좋다고 방방 뛰며 좋아라했던 채은이 이젠 시들거리는 파김치로 변한 것이다.'“그러다 네 약혼자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들을 테면 들으라지. 완전 일중독이야. 난 쳐다보지도 않고 매일 일. 일. 일.”'채은이 짜증을 부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집안끼리 정한 혼사였지만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온 사이였다. 5살 위의 신랑은 채은이 혼자 짝사랑으로 시작해서 이젠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발전한 것이다. 채은을 알게 되고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유학길에서도 그 사람을 못 잊어하는 채은은 결혼이 성사되자 우주를 다 차지한 것처럼 좋아라했다. 그런데 막상 채은이 사랑하는 남자는 일에 파묻혀 그녀와 같이 지내줄 시간조차 없었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채은으로서는 많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투덜대며 잔소리를 해대는 성격이 아닌지라 더 버거울 것이다. '“그래도 네가 선택한 사람이잖아. 어쩌겠니?”'“요즘 회의가 느껴지려고 그래. 내가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몰라. 다정하지도 않지 그렇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지. 내가 이렇게 결혼해도 되나 몰라. 왜 그런 거 있잖아, 손해 보는 그런 느낌.”'눈물까지 글썽이며 푸념을 늘어놓는 채은이 안쓰러웠다. 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한다고는 안 믿었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지켜봐온 친구의 감정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결혼이 결정됐을 때 채은의 얼굴을 보았다면 결혼하고 바로 식어 버릴 것이라고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러지 말고 너도 다른 것을 배워보면 어떨까?”'절친한 친구가 저리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안 돼 보였다. 결혼식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신부들은 예민해진다고 하지만 채은은 유독 심한 것 같았다. 예비신랑에게 집착하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기에 돌파구가 필요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