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긴 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었다.'대문 밖에 흐트러져 있는 보온병 조각을 치우고 오라며 지후를 내보낸 뒤에도, 혜자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죄송해요, 언니.”'혜자는 한 귀퉁이를 겨우 허리춤으로 밀어 넣은 희원의 블라우스를, 참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하겠는가.'비켜가는 것이 좋았을 인연이었다. 비켜섬이 옳았을 인연이었다.'이제 겨우 대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이 저보다 한참 나이 많은 커리어우먼과 사귄다는 사실이 충격인지, 아니면 상대가 희원이라서 충격을 받은 건지, 그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말이 안 나오는구나.”'“죄송해요.”'“죄송? 이게 지금 죄송해서 될 일…….”'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 혜자가 하던 말을 멈추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두드렸다.'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상대가 희원만 아니라면 호통을 쳐서 당장 둘 사이를 갈라놓을 텐데, 왜 하필 희원이란 말인가.'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희원 역시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문 앞을 치우고 오라는 혜자의 말에, 두 말 없이 밖으로 나간 그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놀란 가슴을 두드리며 허공을 향해 거푸 한숨을 내쉬는 혜자도, 중죄인인 양 고개를 들지 못하는 희원이나, 믿겨지지 않는 지금의 상황이 꿈만 같았다.'무거운 침묵 위로 내려앉는 형광등 불빛이 왜 이리 환한지, 희원은 자신이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어쩌라고 일이 이렇게 돼 버린 것일까…….'앞으로의 일보다 지금 이 순간을 더 걱정스러워하는 자신이 한없이 얄팍하게 느껴졌다.'질식할 것처럼 무거운 긴 침묵을 접으며 혜자가 말했다.'“없던 일로 하자.”'“…….”'“난 아무것도 못 봤고, 희원이 넌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자.”'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왜 대답을 못해?”'“언니…….”'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